[창간95/FIRST & BEST] 칸영화제 첫 여우주연상 전도연… 최초 근대 書店 '회동서관'

    입력 : 2015.03.05 03:00 | 수정 : 2015.03.05 03:20

    은반에서 은막까지… 한국의 꽃, 세계가 감동

    1949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신년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신년사였다.
    1949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신년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신년사였다./조선일보 DB

    "잃었던 나라를 찾았으며 죽었던 민족이 살아났으니 새해부터는 우리가 보다 새 백성이 되어 새 나라를 만들어 새로운 복(福)을 누리도록 합시다."

    1949년 1월 1일 조선일보 1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신년사가 실렸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대통령으로서 발표한 첫 신년사였다. 조선일보는 '반세기 굴욕 전감(前鑑) 삼아 국가 수호를 맹세하자'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제1호' 대통령 신년사를 4단 크기로 실었다. 이 대통령은 1910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 제1호 박사'이기도 하다. 여성 박사 1호는 193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를 받은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오랜 식민 통치와 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미래의 발전에 주춧돌이 될 학문과 문화의 싹은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

    최초의 국어사전은 1911년 주시경·김두봉 등이 편찬 작업을 맡은 '말모이(말을 모은다는 뜻)'였다. 편찬자들의 사망·망명 등 사정으로 출판이 무산되면서 원고본만 남았지만,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최초 사전임은 틀림없다. 처음 출간된 국어사전은 1925년 나온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이다. 1906년 당시 경성 남부 대광교(전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서는 최초의 근대식 서점 회동서관(�東書館)이 문을 열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 등도 여기서 출간됐다. 1908년에는 최남선이 최초의 근대식 잡지로 꼽히는 '소년'을 창간했다. 창간호 독자는 6명이었다.

    1893년 축성식이 열린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꼽히지만, 천주교에서는 1887년에 짓기 시작해 11년 만에 완성된 서울 명동성당을 제1호 성당으로 본다. 1887년은 선교사 언더우드가 서울 정동의 한옥에서 신자 14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새문안교회를 창립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1883년 황해도에서 인삼 장사를 하던 서상륜·경조 형제를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설립한 소래교회가 있었다.

    1907년엔 한국 최초 상설 영화관인 단성사가 문을 열었고, 1923년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가 개봉했다. 1927년엔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이 설립됐지만, 본격적 대중문화의 싹은 전쟁 후 본격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움트기 시작했다. 1952년 세워진 신상옥프로덕션은 촬영소부터 극장까지 수직 배급 라인을 갖춘 최초의 메이저 스튜디오였다. 1961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은 당시 1주일 먼저 개봉한 홍성기 감독의 영화 '춘향전'과 함께 한국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초대형 스크린) 영화로 꼽힌다. 이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5)'가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넘었고,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가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1956년에 개국한 대한민국 제1호 상업 방송국 KORCAD(HLKZ-TV)에선 제1호 TV 드라마로 PD 최창봉의 첫 작품인 30분짜리 생방송 드라마 '천국의 문'이 전파를 탔다. 5년 뒤인 1961년에는 오현경·김혜자·임현식 등이 최초의 공채 탤런트로 KBS에 입사했다. TV 드라마로 데뷔한 여배우 전도연은 2007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첫 한국 배우가 됐고, 영화 '국제시장'의 여주인공 김윤진은 2004년 한국 배우로선 최초로 미국 드라마('로스트')에 출연하며 한국 배우들의 세계 진출 신호탄을 쏴 올렸다.

    1966년엔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연출 임영웅)가 첫선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던 한국이 광복 후 70년간 기적적 경제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문화적 성장을 이뤄낸 발자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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