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95/FIRST & BEST] 올림픽 피겨 첫 金 김연아·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

    입력 : 2015.03.05 03:00 | 수정 : 2015.03.05 06:47

    은반에서 은막까지… 한국의 꽃, 세계가 감동

    "브라보! 원더풀 코리아!"

    ‘피겨 여왕’ 김연아는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4년 뒤 소치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뒤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4년 뒤 소치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뒤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했다./최문영 기자

    2010년 2월 26일(한국 시각)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세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프리스케이팅. 아름다운 선율에 맞춘 환상적이고 우아한 연기로 얼음판을 수놓은 요정의 연기에 전 세계는 푹 빠져들었다. 4분 9초 동안의 '마법(魔法)'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온 팬들의 입에서 잠시 후 환호성이 절로 터졌다.

    전광판에 새겨진 역대 세계 최고 점수인 150.06점. 역시 역대 최고 점수였던 쇼트프로그램 78.50점을 더해 합계 228.56점으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여왕' 김연아(25·고려대 대학원)였다. 얼음판의 낭보는 김연아에 앞서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먼저 울려 퍼졌다. 16일 모태범(26·대한항공)이 남자 500m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빙속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17일 이상화(26)가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보탰다. 이상화는 4년 후인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한국 빙속 사상 첫 올림픽 2연패(連覇) 위업을 달성했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은퇴해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김연아와는 달리 이상화는 2018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사상 첫 올림픽 3연속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밖에 손연재(연세대)도 비인기 종목인 리듬체조로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입상하고,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일궈내면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타로 성장했다.

    ①양정모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건국 이래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②1994년부터 17년간 124승을 올린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박찬호. ③이상화는 2018 평창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다. ④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에 이어 상금왕 2연패를 이룬 박인비.
    (위에서부터)①양정모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건국 이래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②1994년부터 17년간 124승을 올린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박찬호. ③이상화는 2018 평창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다. ④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에 이어 상금왕 2연패를 이룬 박인비.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처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했던 한국은 44년 만인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김기훈이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쇼트트랙 외에도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오르면서 겨울철 스포츠 주변국 굴레에서 벗어났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 스포츠 무대 시상식에 오른 이는 고(故) 손기정 옹이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29분19초2로 당시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여서 손기정 옹의 가슴에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달려 있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4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는 대한민국 최초의 남자 마라톤 금메달을 안기면서 손 옹의 한풀이를 했다.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최초의 선수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회 남자 레슬링 자유형에 출전한 양정모였다. 여자 배구는 그 대회에서 구기 사상 처음으로 시상대(동메달)에 올랐다. 대표팀 리더였던 조혜정은 당시 외신으로부터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는 애칭을 얻었다.

    프로복싱 최초의 세계 챔피언은 고(故) 김기수씨로 국내 최초 체육관인 장충체육관에서 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2대1 판정승으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구기 종목 해외 진출 1호는 프로야구 롯데 감독을 지낸 백인천(72)이었다. 백인천은 1962년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했고, 1975년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백인천이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타율 0.412는 최초이자 유일한 4할 타율로 남아 있다. 이후 꾸준히 수준을 끌어올린 한국 야구는 1994년 박찬호를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로 탄생시켰다.

    축구의 주류였던 유럽 무대에 처음 진출한 선수는 차범근(62) 전 국가대표 감독이다. 아시아 최고 스트라이커였던 그는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해 '차붐'이란 애칭으로 유럽 무대를 누볐다. 종주국 영국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었던 박지성(34)이 물꼬를 텄다.

    4대 구기종목의 최초

    미 LPGA 투어의 한국인 최초 우승자는 구옥희였고, 1998년 7월 맥도널드챔피언십 우승으로 첫 메이저리그 우승자로 기록된 박세리는 한국 여자 선수로선 최초로 미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박인비는 2013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LPGA투어 올해의 선수가 됐다. PGA 투어에선 2002년 뉴올리언스 콤팩클래식에서 최경주가 한국인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연덕춘이 1935년 한국인 1호 프로 골퍼로 역사에 등장한 이후 60여년이 지나 한국 골프가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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