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간 5차례 논란…결국 헌법재판관 7명이 폐지 결정

입력 2015.02.26 14:43 | 수정 2015.02.26 15:06

62년간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간통죄가 26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7명에 의해 완전 폐지됐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수도이전 위헌 심판사건,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심판 사건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은 물론 호주제, 동성동본금혼, 군(軍) 가산점제 등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등의 위헌(違憲) 결정을 내리면서 헌재가 우리 사회 변화를 주도해가는 셈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조항 도입 여부와 문구를 둘러싸고 국회의원들 사이에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간통죄는 그동안 수차례 폐지가 추진됐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안은 마지막 순간 번번히 물거품이 됐고, 62년 동안 간통죄 조항은 한 자(字)도 고쳐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선고 모습.
1970년대 간통죄 논란은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혼을 전제로 한 간통 고소는 여성에게 불리해 폐지해야 한다”, “민법으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20년이 넘었으니 이젠 없어도 될 단계다” “부부(夫婦) 일이 공개되지 말아야 한다”는 폐지론과 “남자들의 방종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갑자기 폐지되면 부작용이 크다” “남성 중형(重刑)주의로 바꾸자”는 유지론이 맞섰다.

1985년에는 정부 주도로 간통죄 폐지가 추진됐다. 형법 개정을 추진하던 법무부 형법개정특별심사위원회 소위원회는 간통죄 폐지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되자 결국 표결 끝에 폐지 8명, 기권 2명으로 폐지키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1992년 6월 법무부의 형법개정법률안 수정안에는 간통죄를 유지하되 징역 2년 이하의 법정형을 징역 1년 이하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수정됐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도 간통죄 폐지 의견이 높았지만, 반대 의견이 적잖은 국민 정서를 감안해 법은 존속시키되 처벌을 완화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여론조사결과 7대3 비율로 존치 찬성이 높자 법정형을 낮추고, 벌금형을 도입해 처벌 수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여성계와 유림 등의 반대로 1995년 12월 통과된 개정 형법에는 간통죄는 문구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다.

2007년 형법 제정 이후 처음 추진된 형법 전문 개정 때도 간통죄 폐지가 논의됐다. 2010년 3월 법무부 산하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는 격론 끝에 표결을 통해 간통죄 조항 삭제키로 했다. 앞서 2008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의견 5(위헌)대4(합헌) 의견으로 가까스로 합헌(合憲) 결정을 내리고, 이듬해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간통죄 폐지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정부는 당시 이를 공식발표하고 공청회와 입법예고 절차를 거쳐 형법 개정안 최종적으로 확정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간통죄 폐지는 끝내 백지화됐다.
간통 사건을 마무리한 헌재는 앞으로도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시행 11년째를 맞는 성매매 방지 특별법에 대한 위헌 여부와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근거규정에 대해서도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두 사건 모두 법원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상태다.

헌법재판소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에 대한 논란이 없진 않지만 국민 인권 보호와 자유 확대 측면에서는 적지않은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사회적 균형추로서 헌재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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