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간통죄 제정 당시 국회 속기록 보니…

  • 전수용 기자
  • 이철원
    입력 2015.02.26 14:35 | 수정 2015.02.26 15:16

    헌법재판소가 26일 위헌 결정을 내린 간통죄는 1953년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전에도 간통죄는 존재했지만 유부녀만 처벌하는 조항이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간통죄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당시 남편과 아내 모두 처벌할지, 여성만 처벌할지, 아니면 아예 간통죄를 폐지할지를 놓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는 남편과 아내 모두 처벌하는 쌍벌주의를 제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아예 간통제를 폐지하자는 개정안을 냈다. 일부 의원들은 아내만 처벌하자고 했고, 몇몇 의원들은 남편만 처벌하자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격론 끝에 표결에 들어갔고 정부안이 1표 차이로 채택되면서 지금까지 간통죄가 유지되어 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간통죄 제정 당시의 고민은 1953년 7월 3일 열린 임시국회 속기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먼저 법사위원장 대리 엄상섭 의원이 개정안에서 간통죄를 삭제한 이유를 설명했다. “남녀를 같은 조건으로 처벌하게 되면 많은 파탄이 일어날 것이다. 본부인과 협의하에 소실을 얻어 이미 아들, 딸을 낳고 사회적으로 기정사실로 형성되어 있다. 갑자기 남성의 이런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하면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 하나이고, 법률의 관습은 남의 집 문턱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부부간의 일은 부부 자체에 맡길 것이지 법률로 처벌해야 될 것인가, 처벌한다고 고쳐질 것인가, 결국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해 삭제하게 됐다”

    이어 변진갑 의원이 쌍벌제를 담은 정부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아내가 남편을 고소하려면 이혼을 해야 하는데 사랑하는 자식 다 버리고, 살림살이 다 버리고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친정도 없으면 도로 상에서 방황하다가 죽어버리거나 할 텐데, 남편을 고소할 아내는 없다. 쌍벌제는 허울 좋은 소리다. 그래서 폐지하자는 것이다. 여자가 정조를 지키는 것은 징역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국민의 도덕적 발달에 맡길 것이지 법률로서만 처벌하는 것은 필요없다.”

    방만수 의원은 여성만 처벌해야 한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자부하는 것은 조상이 남겨 준 피의 순결뿐이다. 우리 헌법 정신도 조상이 남겨준 피의 순결을 고수해 나가는 데 대해서는 조금도 위반됨이 없으리라 믿는다. 부녀층에 대해서는 좀 미안하지만 (여성만 처벌하는) 단벌주의를 제안했다. 단벌주의를 채택하든지 쌍벌주의를 하든지 간통죄만은 절대 살려야 한다”

    김봉조 의원은 간통죄는 거의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남성만 처벌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만에 한 사람이나 십만에 한 사람이나 남편 있는 여자가 간통하는 예가 더러 있지만, 극히 소수이고 실제 처벌해야 하는 것은 남편 간통이 많다”

    이진수 의원은 남편이나 아내만 처벌하자는 수정안 모두에 반대했다. “20세기 말엽에 방만수 의원과 같이 봉건적인 입법으로서 부녀자를 구속한다고 하는 악법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또 김봉조 의원에 대해서도 1500만 여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에 속죄하는 일인지 모르나 방 의원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멸시하는 것으로 있을 수 없다. 남녀평등 정신, 우리 순혈을 주장하는 의미에서 (남편과 아내를 모두 처벌하는) 쌍벌로 해야 한다”

    조주영 의원은 폐지를 주장했다. “간통죄를 없애면 여성 품행이 방정하지 못할 것 아니냐고 염려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큰 모욕이다. 민주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 문제는 가정에서, 부부간 관계도 부부끼리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 애지중지하는 데서 평화가 오고 행복이 오는 것이지 사내를 의심하고 고소할 자료를 장만하려고 하면 이런 부부·가정은 그것 자체가 불행한 것이다.”

    결국 거수(擧手) 표결에 들어갔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서는 110명 중 찬성이 49표에 그쳐 미결됐다. 남성만 처벌하자는 안은 8표, 여성만 처벌하자는 안은 한 표도 얻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정부 원안에 대해 112명 의원 중 찬성 57표가 나와 단 한표 차이로 가결됐다.
    고 이태영 변호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20여년이 지난 1975년 간통죄가 사회적 논란이 일자 우리나라 1호 여성 변호사인 고(故) 이태영 변호사는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간통죄 제정 쌍벌제를 채택한 것은 당시 국회의원을 비롯해 남성들은 축첩 등 이중생활을 공공연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절을 남편의 의무로 생각지 않을 때라 상당수 남자들이 형무소행을 못 면할 처지였다”면서 “(간통죄 폐지에 대해서는) ‘나는 바람을 피웠지만 마누라 바람피는 꼴은 죽어도 못본다’고 남성 국회의원들이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 역시 “간통죄는 성 문제에 있어서 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규제하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며 간통죄 불가피성을 일부 인정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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