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8] 뺑뺑이 돌려 학교 정한 70년대… 판사들 사건 배당도 추첨기 써

입력 2015.02.25 03:00

1969년 2월 5일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물레처럼 생긴 8각형 통의 추첨기를 돌려 진학할 학교를 결정하고 있다.
1969년 2월 5일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물레처럼 생긴 8각형 통의 추첨기를 돌려 진학할 학교를 결정하고 있다.

1969년 2월 5일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생 5만여명은 영하 15도 강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차례를 기다려 가며 물레처럼 생긴 기계를 뱅뱅 돌렸다. 1968년 중학 입시 폐지에 따라 진학할 학교를 정하는 첫 추첨이 실시된 것. 팔각형 통의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두 바퀴, 왼쪽으로 한 바퀴 돌리면 운명의 은행알을 한 개 톡 뱉어내는 '수동식 회전 추첨기'가 교육행정에 처음 도입됐다. '뺑뺑이 세대'란 말이 이 기계에서 비롯됐다. 어린이들은 운동 경기라도 구경 나온 듯 떠들고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본 추첨기를 제대로 못 돌릴까 봐 대기실에서는 연습용 기계로 몇 번씩 연습까지 시켰다(조선일보 1969년 2월 6일자). 부정·불공정 시비를 없애려고 어린이들 손으로 직접 자기 학교를 뽑게 했다. 1979년에는 25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느 만학도가 추첨기를 돌리려 하자 '왜 아빠가 돌리느냐'며 다른 학부형들이 항의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은행알 추첨기는 원시적인 듯해도, 당시 추첨 수단 중에선 진화한 것이었다. 1966년의 사립초등학교 입학 추첨 때는 양은 냄비 속에 담긴 은행알을 숟가락으로 퍼냈다. 껌 종이에다 번호를 적어 추첨한 학교도 있었다.

1960~1970년대 한국에선 추첨을 참 많이도 했다. 복권 당첨자도 전화 가입자도 추첨으로 뽑았다.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 입주 땐 1850가구의 동·호수를 은행알로 추첨했다. 심지어 법원은 1979년 초 사건 배당의 공정성을 기한다며 은행알 추첨기와 비슷한 수동식 추첨기를 도입해 한때 사용했다. 각급 법원장실 또는 수석 부장실에 비치해 놓은 추첨기를 아침마다 판사들이 돌려 사건을 배당받았다(경향신문 1980년 1월 26일자).

1980년대 들어 컴퓨터 추첨이 늘어났어도 수동식 추첨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1998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에 대한 지명 우선권을 갖는 팀을 결정할 때 쓴 것도 은행알 추첨기였다. 내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 바로 뽑아내는 수동 추첨기에는 손에 잡히는 '아날로그적 감촉'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1969년 중학 추첨 때도 컴퓨터 추첨이 가능했지만, 당국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택하지 않았다. 생소한 디지털 방식에 대한 불신을 우려한 것이다. 서울의 중학 배정이 1970년부터 컴퓨터 추첨으로 전환됐어도 지방에서는 70년대 말까지 수동식 추첨기를 계속 쓴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지난 연말 찾았던 일본 마쓰야마(松山) 시내 상가의 '고객 사은 경품 추첨'에서는 은행알 추첨기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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