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햇볕이 좋네예."

"그전엔 어디서 사셨어예?"

지난 8일 오후 3시 30분쯤 부산 금정구 장전동 애광원 앞마당. 고병찬(33)씨가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말을 건넸다. "뭐라꼬?" "니 누꼬?"…. 할머니 답변은 오락가락했다. 애광원은 치매 노인 요양원이다. 고씨는 "매월 세 차례 애광원을 찾아 식사 시중, 산책 돕기, 방 청소 같은 봉사를 한다"고 했다. 고씨는 부산 지역 모임인 '바보클럽(이하 바클·www.ibaboclub.com)' 회원이다. 이 모임엔 이름처럼 '바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글댄다.

'바클' 회원은 7000명에 이른다. 스스로 '바보'라고 여기고 그걸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영악함은 싫다. 순진함이 좋다' '바보란 천진하고 순수해 하늘의 뜻을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좇아가는 사람' '사랑, 감사, 웃음, 양보, 신의, 이웃'…. 이 클럽 회원들은 이런 생각을 온·오프라인에서 주고받으며 지낸다. 무한 경쟁 속에서 재빠르게 자기 것을 챙기고 지켜야 하고, 잘나고 똑똑해야 각광받는 현실, 이런 세태와는 거꾸로 가는 셈이다.

지난달 18일 ‘바보클럽’ 회원들이 부산 금정구 장전2동에 있는 지적장애인 복지시설 ‘선아원’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날 바보클럽 회원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상담해주고 같이 어울려 놀아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바클'은 2004년 1월 출범했다. 강민수(65·현 바클 회장)씨가 2000년에 낸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는 수필집이 인기를 끌자 주변 지인들이 "바보클럽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260여명의 '바보'들로 시작했다.

'나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나의 것을 쌓는 것이 아니라 우주원질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우주관)' '따지고 들어서 만족한 해답을 얻겠는가. 그저 허허실실 밑져야 본전으로 사는 것이다(인생관)' '행복이란 종이배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듯 천진한 심성으로 또 세심한 적공으로 간신히 얻을 수 있는 보배로운 것(행복관)' 등의 10대 가치관·행동강령을 표방하고 있다.

이 클럽이 조금씩 알려지자 회원이 급속히 늘어났다. 이기적 세태에 지쳤거나 기질상 맞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4년 전 이 모임 회원이 됐다는 서영민(31)씨는 "'바보클럽'에서 확 느껴지는 느낌, 그것 때문에 가입했다"고 했다. '바클' 10년차로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김성룡(34)씨는 "좀 못났지만 천성이 착한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나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 모임에 참여했다"며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는 문구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고 했다.

이 모임 회원들은 매월 첫째, 셋째 토·일요일을 남을 위해 쓴다. 자기 형편에 따라 주말에 한두 차례 2~3시간씩 봉사한다. 각 10~20명씩 치매노인 요양원, 지적장애인시설, 지역아동센터, 유기동물보호소를 찾거나 저소득층 어린이 목욕, 공부 멘토링 등 봉사를 하고 있다. 월평균 200여명이 참여한다. 이런 규모로 자발적·지속적 봉사를 하는 단체는 전국에 몇 곳 안 된다. 넷째 주말엔 회원 만남, 바보 체험 교육·나눔을 한다. '바보 정신'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이 모임에 열심인 회원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 행복도는 아주 높다. '바클' 1년차인 김태경(22·대학생)씨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하는 나를 통해 정신적 성숙을 체험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바클'에서 3년째 활동 중인 고병찬씨는 "사회적 기업 운영이란 내 인생의 방향을 잡게 돼 기쁘다"고 했다.

'바클'은 요즘 '전국화'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10년 넘게 축적한 온·오프라인 모임 운영, 봉사 활동 등의 노하우를 다른 지역에 공개하고 함께 '바보 활동'을 펼치기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