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2014 세종대왕 나눔 봉사 대상' 시상식에 10대 남매 수상자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학교 기숙사 근처 빈터에서 농사를 지어 얻은 수익금으로 이웃을 도와온 조용하(청심국제고 3)·경화(청심국제중 3) 남매였다. 이들은 각자 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온 우등생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을 만나 공부와 봉사를 동시에 해낸 비결을 들어봤다.

직접기른마늘과호박을들고있는조경화(왼쪽)·용하남매.

◇주변 활용하면 지속적 봉사 가능

지난 2012년 5월까지만 해도 남매는 강낭콩 화분 하나 제대로 키워본 적 없는 평범한 도시 청소년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논밭으로 눈을 돌리게 된 데 대해 용하군은 "가까운 곳에서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발단이었다"라고 말했다. "입시를 위한 보여주기식 일회성 봉사가 아니라 계속 누군가와 연(緣)을 맺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저희가 기숙사생인 데다 학교가 설악면이라는 시골에 있다 보니 접근성 좋은 곳엔 논밭밖에 없었어요. 농사를 해보자는 결론이 나왔죠"(웃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팔아 낸 수익금으로 도시락을 만들고 독거노인에게 직접 전달하자는 데까지 이어졌다. "저희 남매도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조부모님 아래서 컸거든요.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형태보다는 외로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을 채워 드리는 방식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남매의 부탁을 받고 가평군 주민지원실과 설악 면사무소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8명의 어르신을 소개해줬다.

◇실수도 했지만 이웃 도움으로 농작물 수확

경화양은 "농사를 짓자고 결정은 했지만,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고 했다. "부모님께 돈을 빌려 밭 680평을 임차하기는 했는데, 각 작물을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또 파종과 수확 시기는 언제인지 등 지식이 전혀 없었거든요."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건 지나가던 이웃들이었다. "웬 아이들이 밭에 와 있나 하고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의도를 설명해 드렸더니 기특하게 여기시고 농사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셨어요." 어른들의 도움을 얻어 남매는 1년 3모작을 했다. 상반기엔 토마토·감자 등을, 하반기엔 배추·무·파 등을 재배했다. 겨울인 지금 밭에선 마늘·보리·시금치·상추가 자라고 있다. 다행히도 농사에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첫해엔 배추 1800포기를 심어 총 3t(톤)을 거둬들였고 지난해엔 감자 1t을 수확했다. 용하군은 "이번엔 양분이 꽃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감자꽃 따기를 했더니 실한 감자가 맺혔다"며 뿌듯해했다. 가끔 실수도 있었다. 한번은 대량 수확한 새빨간 고추를 전용 건조기가 아닌 건조 기능 있는 세탁기로 말렸다가 다 버린 일도 있다. "고추가 건조되는 게 아니라 푹 삶아지더군요. 한동안 매운 냄새가 풀풀 나는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녀야 했죠"(웃음).

남매는 이런저런 경험 끝에 수확한 작물들을 교내 축제에서 팔거나 부모님의 지인들에게 판매해 첫해 610만원, 이듬해 350만원, 지난해 75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 수익은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주로 밭에서 구할 수 없는 달걀과 고기, 과일 등을 구입했다. 일부는 전기료가 부족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게 나는 이웃에게 전달했다. 지난해 가을엔 도시락을 전달하러 갔다가 식수나 생활용수가 없어 불편을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관정 사업 기금으로 쓰기도 했다. '착한 우물 파기'라고 명명한 이 사업은 용하군에게 가장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시간 관리 필수… 교육 봉사 계획도

학업과 농사, 봉사를 동시에 하다 보니 시간 관리는 필수다. 초반엔 시험 기간에 미처 농사일을 하러 가지 못해 작물 관리에 소홀해진 적도 있었다. 당시 주변 어르신들로부터 '설악면에서 잡풀이 제일 많은 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도시락 배달도 만만치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서울 집에서 배달지 18곳까지의 왕복 거리가 200㎞가 훌쩍 넘는 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이들은 일단 공부를 우선으로 하고, 그동안 의미 없이 보냈던 휴식 시간에 나머지 일을 하기로 하면서 균형을 찾았다. 경화양은 "또래들보다 바빠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오히려 시간을 알차게 쓰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가족 간 우애도 깊어진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사이가 좋지 않은 남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 힘든 일을 같이하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졌어요." 용하군도 지난 3년간 배운 점이 많다고 했다. "부족한 농사 실력 때문에 잘 보살펴주지도 못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자라준 작물을 보면서 제 생활을 반성하곤 했어요. 병충해가 들었을 때 직접 만든 유기농 농약으로 벌레를 퇴치하면서 식물들이 '기르는 대상'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친구'라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용하군은 현재 홍콩·미국 대학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중학생인 경화양은 고교 입학을 앞둔 지금 동국대학교에서 테솔(TESOL·국제영어교사과정) 수업도 받고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유아들을 대상으로 농사와 영어를 접목시킨 '팜스쿨' 교육 봉사를 하면서 나눔을 이어나갈 거예요. 목표가 이루어질 날을 상상하니까 벌써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