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좌파, 부자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

    입력 : 2015.02.18 00:01

    영화 킹스맨 포스터

    -‘캐비어 좌파’ 정서를 담은 영화 ‘킹스맨’

    지구온난화를 위해 많은 재산을 기부했지만 무책임한 인간들 때문에 지구를 구할 길이 없다는 절망에 빠진 천재 벤처 기업가. 그는 결국 지구를 청소할 계획을 세우지만, 20세기 초 왕족들이 세운 첩보기관 요원인 ‘킹스맨’들이 그 음모를 막는다… 는 줄거리. 두어줄로 요약하니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네요.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킹스맨을 두고 나온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한 줄 평은약 빤 영화라는 말이었습니다. 영화는 정말로 마약에 취한 듯, 마구 쏘아대고 낄낄거립니다.

    특히 두번의 대량 학살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한번은 악당의 음모로, 한번은 악당을 쳐부수기 위해. 한번은 기독교인들이, 한 번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몰살됩니다. 이 장면에 리녀드 스키너드의 ‘프리 버드’,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 나오는데, 대학살은 긴장된 살육이 아니라 게임 영상처럼 보입니다. 올드보이의장도리 액션씬이 과장과 황당함으로 특별한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냈듯, 이 장면은 폭력성 논란을 피하면서저희는 싼마이거든요으로 예봉을 피합니다.

    첫 임무가 대처 수상의 암살을 막은 것이었는데, 아무도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았다는 대사도 나옵니다. 이쯤되면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이 어디쯤인지는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주장을 들릴 듯 말 듯 처리하는 대신스타일로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영화 '킹스맨' 한장면

    영화의 주연은 콜린 퍼스, 조연은 수트입니다. 요즘엔 입어서 아저씨 냄새가 나면 양복, 모델처럼 멋지면수트라 하더군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수트는 현대남성의 갑옷”. ‘요즘 애들옷을 입던 청년 에그시가킹스맨첩보원이 되면서 맨 먼저 한 일은 몸에 꼭 맞는 맞춤 수트를 입는 것이었습니다. 방탄 기능과 발사 기능이 있는 장우산은 첩보원의 무기가 되고, 끈을 매는 옥스퍼드 구두는 칼날이 나오는 첩보원의 숨은 무기입니다. 신사라면 하나쯤 있어야 할 만년필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화가 말하는괜찮은 남자란 제대로 된 수트에 옥스퍼드 구두를 신고, 주머니엔 만년필을 꽂았으며, 때로는 장우산을 드는 영국식젠틀맨입니다.

    리바이스 청바지, 뉴 발란스 운동화, 검은 색 터틀넥스티브 잡스로 대변되는실리콘 밸리 청년 갑부들 패션과는 정반대 지점에 이 영화의 패션이 있습니다. 2000년대이후 세계 남성 패션의 큰 축은캐주얼이었습니다. 양복에도 운동화를 신는 식 입니다. ‘킹스맨은 실리콘밸리가 낳은 캐주얼유행을 단번에 뒤집으려는 야심의 표현으로도 읽힙니다.

    실리콘밸리 패션을싸구려 패션으로, 영국 신사복을쿨한 패션이라 웅변하는 영화에는 노골적인 영국식 자문화 중심주의가 엿보입니다만 관객에게는 이것이 두시간 남짓한 남성 패션쇼로도 보여집니다. 주효했던 걸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 영국 사이트에 접속해서킹스맨 수트’ ‘킨스맨 구두를 구입했다는 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옵니다. 명품 입고 최고급 레스토랑에 다니면서가진 자를 증오하는 캐비어 좌파의 정서가 이 영화에 물씬합니다. 요즘엔 그게한 걸로 취급받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정치적 분석 없이도 영화는 128분의 상영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영화 '킹스맨' 한장면

    - 부자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법, ‘폭스캐처

    1996 1, 미국 최대의 화학 메이커 듀폰의 후계자이며 열렬한 미국 레슬링 후원자였던 존 E 듀폰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 슐츠에게 세발의 총을 쏩니다. 그가 48시간 동안 대저택에 숨어있는 동안 CNN등 방송은 그 현장을 생중계했습니다. 그는 왜 그토록 아꼈던 데이브를 살해했을까. 당시 언론들은 그의 술과 마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하고, 어머니가 사망한 뒤 정신병적 기질이 심화됐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내면탐색이 돋보이는카포티’, 야구 실화를 다룬머니 볼로 유명한 베넷 밀러 감독은 전작 두 편에서 보인 자신의 장기를 이 영화에서 극대화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드러나지 않았던 내면을 추적하는 겁니다.

    영화 '폭스캐처' 한장면

    영화에서 듀폰은 이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어릴 적 내 유일한 친구는 집사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 친구가 되어주라고 어머니가 돈을 준 것이었다부자들은 늘 세상이 자신의 돈을 탐낸다고 생각할 겁니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에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자신의 깃털을 탐낸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듀폰은 그래서 돈이 할 수 있는 일 말고, 돈이 할 수 없는으로 하는 일에 애착을 갖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레슬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압니다. 자신은 레슬링 챔피언이 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래서 레슬러를 후원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좌절입니다. 레슬러도 사람이기에 때로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반항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또 다시 돈의 힘에 기댑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대회를 만들고 자신이 우승을 사고, 동생(마크)로 부족하면 형(데이브)를 또 거액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겁니다.

    진정한존중을 갈망하는 그는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존중을 돈으로 삽니다. 그리고 또 그 매입한 존중을 또 경멸하는 식입니다. 그에게 돈은 뭐든 걸 가능하게 하는 천사의 징표이자, 모든 걸 망치게 하는 악마의 물건입니다.

    감독은 듀폰을 지독하게 거만하거나 오만한 배금주의자로 그리는 대신 고독하고, 강박적이며, 신경증적인 인물로 그려냅니다. ‘하녀’ ‘돈의 맛처럼 한국 감독들이 부자를 그리는 방식보다는 좀 더 여러 겹(layer)으로 부자의 내면을 축조해 나갑니다.

    감독의 매력적인 연출과 코믹배우 스티브 카렐의 놀라운 변신, 마크 러팔로, 채닝 테이텀의 셈세한 연기. 레슬링이라는 남성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여성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는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매우 적은 숫자의 예술영화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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