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대표적 사찰인 봉은사가 이번 달 사찰 최초로 법회 때 불교 음악 연주를 위한 국악관현악 합주단 창단에 나선다. 불교 음악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봉은사 주지 원학(61) 스님이 국악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67) 전 중앙대 총장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법회 때 부르는 찬불가는 1927년 백용성 스님이 불교의식에 끌어들이면서 시작됐다. 요즘은 웬만한 사찰마다 일요 법회 때는 합창단이 신자들과 함께 찬불가를 부른다. 찬불가와 함께 법당에 자연스레 등장한 악기가 피아노다. 서양 악기인 피아노가 전통 불교의식을 지탱하는 주요한 도구로 쓰여온 것이다.
박범훈 전 총장은 "불교 음악은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불교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굳히고 음악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국악 주요 레퍼토리인 영산회상, 회심곡 등은 모두 불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박 전 총장은 27년 전인 1988년 10월 23일자 조선일보 '일사일언' 칼럼에 '법당 안의 피아노'라는 제목으로 '법당 안에서 피아노 반주에 국적 없는 찬불가 소리가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고 썼다. 당시 그는 칼럼을 읽은 몇몇 스님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는 힐난부터 "그러면 제대로 된 찬불가를 한번 써보라"는 주문까지 다양했다.
이 사건은 서양음악 작곡가인 그가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음악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한국 불교음악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내고 국악 칸타타풍의 찬불 음악과 법당에서 대중이 부르는 찬불가를 썼다. 봉은사는 이렇게 불교음악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해온 박 전 총장을 기둥 삼아 불교 의식과 국악의 접목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봉은사는 다음 달 중순까지 공개 오디션을 거쳐 국악 합주단원을 뽑아 불교음악을 연주하는 법회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주지 원학 스님은 11일 "불교음악과 국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찬불가와 전통 국악이 만나 새로운 불교 의례 음악을 만들도록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국악 합주단 편성은 피리와 대금, 해금, 아쟁, 가야금, 거문고, 장구 등 국악기 연주자와 남도창과 경서도창 1명, 그리고 지휘, 작·편곡자 1명씩 모두 11명 규모다.
봉은사의 국악 합주단 창설은 조계종 주요 사찰로 확산될 전망이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불교 의식을 국악기로 연주해 불교음악의 토착화를 강화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11일 "종단 차원에서 봉은사를 시작으로 주요 사찰에 국악 합주단을 둬 불교 의식에 활용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종단 산하에 불교음악을 새로 정리하고 교육할 '불교음악원' 설립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봉은사 국악관현악 합주단 단원 모집은 이달 중 공개 오디션을 통해 모집한다. 선발된 단원은 주3일 출근해 매주 일요 법회와 초하루 법회, 초삼일 법회 등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연봉은 1200만원 수준이다. 문의 (02)3218-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