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23] 잊혀짐이 없는 세상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2.12 03:00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일이다.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 어제 너무 늦게 커피를 마신 탓일까? 아니면 너무 많이 먹은 야식 때문일까? 다시 잠들기에는 이미 너무 늦지만, 일어나기엔 여전히 이른 시간. 눈이 번쩍 떠지며 우리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에 시달린다. 왜 그때 더 당당하지 못했을까? 왜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그 당시에 그렇게도 비굴했을까? 결국 우리는 답 없는 수많은 질문을 이불킥 한방으로 차 버리고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인생과 TV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부분 삶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옆집 빵집 주인이 재벌 2세일 리 없고, 아무리 부모님에게 물어봐도 출생의 비밀은 눈곱만큼도 없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부모님의 평범한 자식,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부모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유별나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인생 대부분을 가끔 바늘같이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 좌절, 죽음의 기억은 우리를 그만큼 더 괴롭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희망은 있다. 인간에게는 잊혀짐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있기 때문이다. 연인과 헤어져 하늘이 무너질 것 같지만, 얼마 지나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자리를 잘만 지키고 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던 치욕도 시간이 지나면 남 이야기처럼 할 수 있게 된다.

    세계적으로 화제인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 기술 발전을 통해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드라마에선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녹화되는 세상이 소개된다.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라 불리는, 이미 많은 학교와 기업이 연구하고 있는 이 기술이 보편화된 세상에는 잊혀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말싸움이 필요 없다. 녹화된 장면들로 바로 검증 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끝없이 반복하고 끝없이 재경험하기에 너그러움도, 용서도 불가능해진다. 그렇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은 잊혀짐이 있기에 오늘도 완벽함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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