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5] 움직이는 광고 '샌드위치맨'에… 언론 "人道的 면에서 안됐다"

입력 2015.02.04 03:00

1962년 12월 서울역 앞 지게꾼 옆을 걸어가는 샌드위치맨.
1962년 12월 서울역 앞 지게꾼 옆을 걸어가는 샌드위치맨. 사방을 둘러싼 영화 광고판 때문에 몸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조선일보 DB
1960년대 전후, 신작 영화의 화려한 포스터는 극장 건물이나 담벼락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 포스터가 움직이며 다가왔다. 극장이 고용한 '샌드위치맨'들이었다. 오늘날엔 구호를 몸에 두른 1인 시위자도 샌드위치맨이라 부르지만, 반세기 전 오리지널 샌드위치맨들은 일정한 모양의 도구를 썼다. 몸의 앞뒤 혹은 동서남북 4면을 두르는 광고 부착용 나무틀이 있었다. 틀을 뒤집어쓰면 머리와 종아리만 달랑 드러났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등의 구호를 외치는 일도 있었으나, 말없이 뚜벅뚜벅 걷는 게 기본이었다. 정지해 있으면 '불법 옥외 광고물'이 될까 봐 계속 움직였다. 시선 집중 효과는 만점이었다. 어느 샌드위치맨은 쉬는 날 '선(線)을 지키자'는 등의 문구를 몸에 붙이고 서울 도심에서 교통안전 캠페인을 벌였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행인들 시선이 너무 쏠리자 경찰은 오히려 교통안전을 위협하겠다며 몰아냈다(조선일보 1980년 10월 5일자).

몸뚱이 하나면 되는 이 일은 지게꾼과 함께 최빈곤층의 대표적 일자리였다. 김수용 감독의 1965년 작 영화 '적자(赤字)인생'에서도 초라하게 사는 주인공(신성일)이 거치는 험한 직업들 중 으뜸이 샌드위치맨이었다(경향신문 1965년 3월 1일자). 박경원의 옛 가요 '샌드위치맨의 수기'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 거리 저 거리를 정한 곳 없이 / 오늘도 발걸음 맡겨 논 신세 / 거리의 삐에로냐 샌드위치 맨 / 등에 진 영화 간판 황혼이 진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건 간판 무게가 아니라 킥킥 웃으며 수군대는 사람들 시선이었다. 어느 청년은 샌드위치맨 첫날 "어머! 난 저런 사람 싫어!"라는 여학생들 소리에 그림판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들이 피에로 분장을 자주 했던 건 얼굴을 숨기려는 이유도 컸다. 허우샤오시엔 감독 영화 '샌드위치맨'에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일을 하는 아빠를 보아 오던 아이는 분장을 지운 아빠 얼굴을 못 알아보고 울어, 아빠를 울린다. 시인 이인석은 우연히 본 샌드위치맨의 '눈동자와 표정이 도시 잊히지 않는다'며 장문의 수필을 신문에 기고했다(조선일보 1957년 7월 5일자). 늘어가는 샌드위치맨들을 보며 옛 신문 칼럼은 "인도적(人道的)인 면에선 확실히 보기가 안되었다"고 썼다.

요즘도 가끔 업소를 광고하는 샌드위치맨들이 있다. 하지만 지방 축제 현장의 각설이가 진짜 걸인이 아니듯, 대개 '샌드위치맨 쇼'일 뿐이다. 생계의 벼랑으로 내몰린 몸뚱이들을 가렸던 샌드위치맨 판자 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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