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人] 백남준과 함께 한국미술의 세계화 이끌어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5.02.02 03:00

    미술史학자 임영방

    미술사학자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원로 미술사학자 임영방(86·사진)씨가 지난 31일 별세했다. 임씨는 미술 행정가와 이론가 면모를 두루 갖춘 미술계 입지전적 인물이다.

    시대를 앞선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인천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계 석유회사에 근무한 선친을 따라 중국 톈진에서 살았다. 귀국 후 1949년 다시 홍콩으로 이주해 영국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같은 학교 학생이던 백남준과 단짝이 된다. 1950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배운 뒤 파리 국립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했다. 1960년 후반 귀국해 서울대 미학과 교수가 됐다. 서울대 교수 시절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 시인 황지우, 화가 임옥상씨 등을 가르쳤다.

    '미술관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2~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장 재임 중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프랑스 세자르전(展) 등 대형 전시를 열어 미술관 문턱을 낮췄다. 특히 1993년 조선일보와 함께 기획한 '아! 고구려'전은 전국 관객 380만명을 동원하면서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의 역사를 썼다.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 작가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시절 주위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중미술 편이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요청"이라며 대규모 민중미술 전시를 열었다. 민중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입성한 사건이었다.

    우리 미술의 국제화에도 기여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았고, 절친한 친구 백남준과 함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6년 우리 문화 예술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 관장직을 그만두며 모든 공직을 관두고 집필에만 매진했다. 외부 기관에서 일체 연구비 지원을 받지 않고 모든 자료 수집을 자비로 했다. 10여년에 걸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중세미술과 도상' '바로크' 등 대작 3부작을 완성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때 구상해 60여년 만에 완성한 평생의 역작이었다.

    미술사학자 최열씨는 "선생님은 퇴임 후 살림집이 있는 자택 1층에서 서재인 2층으로 매일 '출근한다'고 하셨다. 인문 정신의 사표(師表) 같으신 분이었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 부인 조향순씨와 딸 임상미(광고대행사 근무)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서울 흑석동성당 평화의 쉼터. (02)207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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