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服役 2년 넘긴 최태원 회장

입력 2015.01.31 03:00

호경업 산업1부 차장 사진
호경업 산업1부 차장

왕양(汪洋) 중국 경제 담당 부총리가 얼마 전 2박 3일 방한(訪韓) 일정을 쪼개 한 일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오너를 따로 만나는 것이었다. 왕 부총리 측이 연락조차 하지 않은 곳은 국내 재계 3위인 SK그룹이었다. 오너인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있기 때문이었다. 한 재계 인사는 "중국 측은 한국 오너 경영인을 만나야 한·중 경제 협력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고 전했다.

작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도 SK는 찬밥 신세였다. 삼성·LG 오너들이 시 주석을 상대로 서울 신라호텔 임시전시관에서 자사 제품을 설명하는 광경을 SK는 지켜봐야 했다. SK도 중국 우시(無錫)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중국 내에서 에너지·석유화학·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을 벌이고 있지만 윗선에서의 만남이 끊긴 것이다.

냉혹한 비즈니스 현실에서 중대한 결정은 오너 변수가 8~9할을 좌우한다. '중화권의 삼성전자'라고 불리는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그룹 회장은 작년 6월 SK C&C 지분 4.9%를 3810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 의정부교도소에 있는 최태원 회장을 직접 찾아가 만났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봐야 투자 건을 안심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31일로 4년 형기의 절반인 만 2년을 채운다. 그는 대기업 총수 중 수감 신기록을 연일 경신 중이다. 그전까지는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될 때까지 약 10개월을 살았던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이 가장 긴 기록이었다. 신기록 행진을 할수록 SK 내부에서는 "미래가 안 보인다"며 초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당장 다른 나라들과 정·재계 상층부 간의 결정적인 만남을 놓친 것이 한두건이 아니다.

싫든 좋든 오너의 역할은 기업의 운명을 바꾼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작년 11월 대법원의 사회봉사 명령 300시간을 채운 후 삼성종합화학·테크윈을 통째로 사들이는 빅딜을 성사시키고, 이라크로 달려가서 그곳 정치 실세들과 추가 수주에 관한 담판을 짓고 왔다. 한화에선 "김 회장의 경영 복귀 후 그룹이 딴판으로 바뀌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새해 벽두 4년간 8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메가톤급 발표를 했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그룹들은 깜짝 놀랐다. 재계에선 "정 회장과 같은 오너만이 정할 수 있는 투자 규모"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할 골든타임을 놓치면 저(低)성장 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작년 연말 옥중(獄中) 기업인에 대해 경제 살리기를 조건으로 경영에 조기 복귀시키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왔다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시중 여론은 7대3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냉혹한 현실에서 오너의 장기 부재는 한국 경제를 곪게 한다. 국민 정서와 경제 현실을 동시에 타개할 묘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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