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아베 총리가 규슈에 가봐야 하는 이유

    입력 : 2015.01.24 02:57

    한현우 문화부 차장
    한현우 문화부 차장

    규슈에 있는 나고야(名護屋)성 박물관 기획계장인 히로세 유이치씨가 한국 교사 293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부산교대에서 6년간 일본어를 가르쳤습니다. 제 집사람도 부산 여자입니다." 교사들이 "와~" 하고 손뼉을 쳤다. 흥이 난 그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마는~." 가사를 조금 틀려 머리를 긁적이더니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하고 노래를 이었다. 지난 20일 조선일보 주최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단이 일본 규슈 사가현의 나고야성을 방문한 자리였다.

    나고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고 5개월 만에 급조한 조선 침략 기지였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90㎞ 떨어진 대마도가 보일 만큼 한국과 가깝다. 도요토미는 이곳에서 조선으로 떠나는 왜선(倭船)들을 보며 "조선과 명(明)나라를 정벌하고 인도에 황궁을 짓겠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랬던 나고야성 앞에 1992년 박물관이 들어섰다. 이 박물관은 한·일 교류를 주제로 한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한글과 일본어로 병기된 전시 안내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일·한의 오랜 교류 역사를 단절시킨 불행한 일이었다"로 시작한 안내문은 "많은 조선 사람과 문물이 일본군에게 약탈됐다"고 했다. 일제 식민 시대를 설명한 글에서는 "일본은 조선을 철저히 탄압하고 황민화 정책과 강제 연행 등을 실시했다"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조선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아베 정권의 일본을 떠올리면 신선하다 못해 낯설었다.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왜란을 설명한 글에서 "14세기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 '왜구(倭寇)'를 둘러싸고 전개됐다"고 써놓았다. 한국 침략 기지였던 나고야가 한국 교류 센터로 바뀐 셈이다.

    지금 규슈 국립박물관에서는 '고대 일본과 백제'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369년에 백제가 왜왕(倭王)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칠지도(七支刀)를 비롯해 백제의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전시회 안내문에도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확인하고 두 나라 간의 오래되고 끈끈한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이번 탐방으로 일본 문화계가 한국에 감사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교류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규슈 국립박물관 학예사 아라키 가즈노리씨는 "양국의 정치가 경색될수록 더 많은 문화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1350년 왜구의 노략질 이후 660여년간 갈등과 평화를 반복해왔다. 매번 일본의 도발이 문제였고, 일본의 화해 움직임에 우리가 화답하면 평화를 되찾곤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두 나라의 선린 관계는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극우 교과서 검정으로 악화되기 시작해 수교 50주년인 올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 총리에게 규슈 국립박물관에 가볼 것을 권한다. 그곳에 전시된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보며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왜 일본 사신은 국왕사(國王使)였는데 조선 사신은 통신사(通信使)였을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일본에 원하는 것은 서로 믿고[信] 교류[通]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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