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헌재의 RO 실체 판단이 달랐다'는 건 초등학생 수준의 주장"

입력 2015.01.23 16:20 | 수정 2015.01.23 17:00

22일 대법원이 내란선동·음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53)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자,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취지와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 이전에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지하혁명조직 RO를 근거로 통진당을 해산시킨 헌재 결정은 정당성을 잃었다는 주장이다.

일부 네티즌들도 ‘통합진보당 해산 무효다!’, ‘저 이유(내란 음모)로 해산시킨 거 아닌가. 통합진보당 해산 왜 시킨 거야?’, ‘무죄인데 왜 통신당을 해산 시켰나. 앞뒤가 안 맞다’라며 동조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 측은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초등학생 수준의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대법·헌재 ‘RO’ 실체 다르게 봤다?

옛 통진당 등은 RO의 실체에 대해 대법원과 헌재가 상반되는 결론을 내놨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하혁명조직으로서의 ‘RO’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형사 사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법정으로 들어서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지자들의 외침에 웃음으로 답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RO가 검찰의 공소 사실처럼 강령, 목적, 지휘통솔체계, 조직보위체계 등을 갖춘 비밀혁명조직이고, 회합에 참석한 130여명이 구성원이라는 의심은 든다”면서도 “이석기 전 의원과 회합 참석자 130여명이 RO 조직에 언제 가입했고,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앞서 통합진보당을 위헌(違憲) 정당이라며 해산 결정을 한 헌재는 RO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헌재는 RO 실체를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헌법재판소는 RO 실체를 판단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문에도 RO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전혀 없다.

헌재·대법원, ‘회합’ 성격을 다르게 판단했다?

헌재와 대법원은 공통적으로 2013년 5월12일 마리스타수교회 모임을 ‘회합’으로 표현했다. 당시 회합이 열리게 된 경위, 회합에서 나온 참석자 발언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1심 법원은 이 회합을 지하혁명조직 ‘RO’의 비밀회합으로 봤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RO 실체를 부인하면서 옛 통진당의 ‘정당행사’로 규정했다. 대법원은 “통합진보당 경기당원 중 정치적·사상적 성향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밝혔다.

헌재 역시 ‘내란 관련 회합’이라고 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통진당의 경기도당 행사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나아가 참석자들의 구성원을 살펴볼 때 통진당 차원의 활동”이라고 밝혔다. 헌재나 대법원 모두 회합의 수장(首長)을 이석기 전 의원이라고 규정했다.

대법원,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 인정 안 했다?

일부에서는 대법원이 이 전 의원과 회합 참석자들에 대해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해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판단과 상충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을 그 근거로 한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역시 헌재와 마찬가지로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을 분명히 인정했다. 대법원이 내란선동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도 실질적 위험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부 주장처럼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내란선동죄 역시 유죄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내란의 실질적 위험성이 없다고 본 것이 아니라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내란음모·선동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선고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재가 내란음모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내란음모죄를 헌재가 유죄로 인정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헌재 결정문에서 “내란 관련 회합 참석자들은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당시 정세를 전쟁 국면으로 인식하고, 그 수장인 이석기의 주도 하에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통신 교란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한 것”이라고 밝힌 부분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내란음모죄를 유죄로 판단하지 않았고, 그럴 권한도 없다. 단지 회합과 회합 과정에서 나온 발언 등 통진당 차원의 정당 행사에서 벌어진 내란 관련 행위에 대한 사실 관계를 적시했을 뿐이지 이런 행동이나 발언들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런 주장은 민사 법원이 형사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꼴”이라며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 대상뿐만 아니라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른 데도 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헌재, RO 때문에 통진당 해산했다?

헌재가 통진당에 대해 최종적으로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은 RO를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하고,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죄를 유죄로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헌재의 판단 대상은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인지 여부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헌재가 판단한 수많은 통진당의 위헌적 활동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헌재는 “통진당 주도세력들이 과거 반국가단체인 민혁당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최종 목표로 한 위헌정당”이라고 판단해 해산 결정을 내렸고, 내란음모 사건도 이런 목표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나 과정으로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개인 이석기 전 의원 등이 형법에 규정된 내란음모죄, 내란선동죄를 범했는지를 판단한 것이고, 헌재는 통진당의 위헌정당 인정 여부를 판단한 것이어서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이 다르다 또는 같다로 비교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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