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사고를 당한 존마크가 귀국하는 날이다. 기적을 베풀어주신 은혜에 두 손 모은다. 세상의 모든 곤한 이웃과 하느님…. 오늘도 용기와 희망 주심에 감사합니다."
지난 21일 오전 대한성공회 남양주외국인복지센터 관장 이정호 신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존마크'와 함께한 아침 식사 장면, 공항으로 떠나기 전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작년 5월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와 얼굴을 크게 다친 필리핀 출신 존마크는 이 신부 등의 도움으로 다행히 수술과 보상이 잘돼 이날 고국으로 돌아간 것. 25년째다, 이런 일로 지새운 날들이.
'국내 최대 마석가구단지'. 그의 일터로 들어가는 입구엔 이런 대형 표지판이 서 있다. 경기 남양주 화도읍 녹촌리 외국인 복지센터, 외국인 노동자 샬롬의 집 주변은 '영업용 가구' '사무용 가구' 등 엄청나게 큰 간판들로 도배돼 있다.
"참 많이 변했지요. 1990년 6월 1일 제 생일날 발령받아 세 살짜리 딸을 목에 태워 들어올 때만 해도 닭똥 냄새 자욱하던 곳인데…."
당시 이곳은 성생농장이었다. 1960년 성공회 영국 신부들이 이곳의 땅을 매입해 서울과 수도권의 한센인들에게 나눠줘 닭을 치던 양계장이 즐비했다. 이 신부가 부임할 때 104세대가 살았다. 처음엔 김성수 주교의 비서를 겸하며 토·일요일은 마석에 와서 먹고 자며 미사를 드리던 이 신부는 1996년엔 아예 이곳을 전담해 이사했다. 풍경은 바뀌고 있었다. 기업형 양계가 늘고 한센인들도 연로해지면서 이곳은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일하는 가구공단으로 변했다. 어느 날 필리핀 사람들에게 물었다. "뭐 필요한 거 없냐?" 돌아온 답은 "예배 좀 드리면 좋겠다"였다. 외국인 노동자 복지에 뛰어든 첫걸음이었다.
마다하지 않다 보니 일은 점점 늘었다. 성당 새로 짓고, 외국인 노동자 복지센터 짓고, 필리핀 노동자들이 매년 5~8월 리그전을 벌이는 농구장 닦고,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바리스타 교육 하고, 외국인 노동자 아이들 맡아 보살피고…. '앵벌이 노하우'엔 도가 텄다. 정부는 물론 기업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에 숱하게 응모해 예산을 따냈다. 그래서 복지센터 곳곳엔 현대건설·SK·다음 등 여러 기업의 로고가 붙어 있다. 남양주 지역의 어려운 외국인·장애인·노인은 국적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돕다 보니 감투도 여러 개다. 작년부터는 양지리에 새로 외국인 상담소를 꾸미고 거기서 미사를 인도하고 있다. 작년에 받은 아산상 상금 1억원도 이런 데 쓰느라 거의 남지 않았다.
성공회는 사제들의 임지를 5년마다 바꾸는 게 원칙. 그러나 그는 재작년 성공회 본부에 1년 근무한 '외도'를 빼곤 내리 이곳을 지켰다. "중간에 정철범 주교님이 '그대로 있을래? 딴 데 갈래?' 물으신 적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한센인, 외국인이랑 먹고 놀려고 그냥 있겠다고 했어요."
작년 말 사제 서품 25년 은경축을 맞았지만 이력서에 적을 다른 경력이 없다. 이 신부는 두 가지 보람을 꼽았다. 연로한 한센인 모시고 일본·미국·유럽 여행 다녀온 것과 작년 2월 방글라데시를 찾았던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귀국한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았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 공항부터 마을까지 길목마다 한국에서 온 성공회 신부를 환영하는 한글 플래카드가 걸렸다. 산전수전 하도 겪어 웬만해선 냉정을 잃지 않는 이 신부이지만 방글라데시 이야기를 하면서는 슬쩍 눈물이 고였다. 그는 "이제 정년까지 한 6년쯤 남았는데, 조기 은퇴 하고 방글라데시 갈까 봐요. 거기서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법도 알려주고, 농사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면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