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정부가 21일 연말정산 세금 폭탄 논란과 관련해 출산·연금 공제를 확대하고, 독신자의 세 부담이 너무 늘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보완책을 마련해 소급(遡及)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교육비와 의료비에 대한 공제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한국납세자연맹이 근로자 증세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등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급쟁이 증세(增稅)'를 추진하면서도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세법 개정으로 세수(稅收)가 9000억원 정도 늘어나는데도 증세가 아니라고 둘러댔다. 많은 월급쟁이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세금 폭탄을 맞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여기다 평상시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 세금을 줄인 효과가 겹쳐 충격이 더 커졌다. 그러다 보니 총급여 5500만~7000만원 근로자들은 세법 개정에 따른 세 부담 증가가 2만~3만원 정도라는 정부 설명이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소득세 개편 논의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증세'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연봉 7000만원 이상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다. 단지 여론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1년여 전 국회에서 245대6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된 법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앞으로도 세법을 개정할 때마다 비슷한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 잇따라 10조원 안팎의 세수 결손(缺損)이 났고 올해도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로 되돌아가 세금을 깎아주고 소급 적용까지 하는 것도 길게 보면 더 큰 문제를 만드는 일이다. 정부가 증세하지 않는 것처럼 꼼수를 부리고 설명이 부족했던 것을 사과하고 이제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하지만 여야(與野)가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여야는 서로 합의해 소득세법 개정안을 압도적 표로 통과시켰다. 그러고서 이제 비판이 커지자 여당은 책임을 정부에 미루고 있다. 야당은 한술 더 떠 마치 자기들은 몰랐다는 듯이 남 욕만 해대고 있다. 야당이 법안에 찬성한 것에 대해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 정도가 "정부·여당의 법안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이 사과의 전부다. 자신들이 주도했던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를 나중에 앞장서서 반대하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다시 보는 것 같다.
여야가 2012년 총선·대선에서 경쟁적으로 복지 확대를 공약하면서도 "증세는 없다"는 모순된 약속을 할 때 이미 이런 사태는 예고된 것이다. 결국 가장 손쉬운 월급쟁이 쥐어짜기 수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적정한 복지 수준에 합의하고 재원이 더 필요하다면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뻔한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는 행태를 그만두고 솔직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월급쟁이 근로자들은 연봉이 높든 낮든 '세금을 공평하게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월급쟁이와는 차원이 다른 재산을 가진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거액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있느냐는 의문이 지금처럼 만연해 있는 한 월급쟁이들의 조세 저항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월급쟁이 쥐어짜기가 제일 쉽다는 해묵은 생각을 버리고 다른 세원(稅源) 발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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