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직장인도 학생들도 "오늘 저녁 羊고기 어때?"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입력 2015.01.17 03:00

    확 달라진 입맛… 羊고기, 한국인을 사로 잡다

    누린내의 벽 넘어서
    생후 1년 미만인 '램'
    냄새 없어 거부감 줄어

    羊갈비·양념 羊고기 등
    마트서 쉽게 구입 가능
    한우보다 저렴한 편

    羊꼬치·갈비 대중화 속
    일본식 羊요리도 인기

    '양고기=건강식'은 속설
    소고기와 비교했을 때
    지방 함량은 비슷하고
    포화지방산은 더 많아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시흥의 양고기 수입·가공업체 하이램. 흰 위생복을 입은 직원 세 명이 양 가슴살 덩어리에서 갈빗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직원들은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자른 양갈비를 흰색 비닐로 포장한 뒤 전국 300여개 식당·식료품점 등으로 보낸다. 이 업체 한승희 대표는 "매달 호주와 뉴질랜드산 양고기를 100~150t 정도 들여온다"며 "지난해 말~올해 초 납품량이 전년도 동기 대비 30% 정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1996년 처음 개업했을 땐 수입 고기 가공만 했지만 5년 전부턴 양고기 전문 식당도 열었다. 한 대표는 "식당 개업 초기엔 주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양고기를 찾았는데, 요즘엔 한국 사람들이 양고기 맛을 즐기게 되면서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간 미식가들의 별식(別食) 정도로만 여겨졌던 양고기가 일반인들의 식생활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양고기 수입액은 3990만달러로 전년 동기 수입액(2441만 달러)보다 63.4%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돼지고기 수입액은 33.3%, 쇠고기는 21.5%, 닭고기는 8.7% 증가했다.

    한국인의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양고기가 점차 우리 식탁을 파고들고 있다. 위 큰 사진은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양갈비 요리. 아래 사진은 양고기를 가공하는 하이램 직원들, 중국식 양고기 훠궈(왼쪽부터).
    한국인의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양고기가 점차 우리 식탁을 파고들고 있다. 위 큰 사진은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양갈비 요리. 아래 사진은 양고기를 가공하는 하이램 직원들, 중국식 양고기 훠궈(왼쪽부터). / 블룸버그·이진한 기자
    가정 식탁에서도 인기

    14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 식육 코너. 진열장 위에 호주산 양고기 소개와 함께 조리법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양고기 맛있게 드시는 법. 1.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른다 2. 양고기에 허브맛 솔트를 뿌린 후 굽는다. 3. 구운 양고기를 머스터드 소스에 찍어 먹는다."

    주부 강서영(37)씨가 양고기 한 팩을 카트에 넣었다. 강씨는 "양고기는 호텔 레스토랑에서나 먹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조리법을 보니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양고기가 대중화되면서 조선족·무슬림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있는 식료품점이 아닌 일반 마트에까지 양고기가 진출했다. 롯데마트는 작년 4월부터 전국 40개 점포에서 양고기 판매를 시작했다. 이마트는 올 들어 수도권 26개 점에서 양갈비와 양불고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홈플러스는 지난 12월 양념 양고기를 출시했다. 가격은 롯데마트의 경우 100g당 4900원. 롯데마트 측은 "한우보다는 싸고, 수입 쇠고기나 삼겹살보다는 비싸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고기 대중화의 일등 공신으로 해외여행 대중화를 꼽는다. 서울 용강동에서 25년째 양고기 전문 식당 '램랜드'를 운영하는 임헌순씨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님이 없어서 준비해놓은 재료를 버리는 날도 있었는데 요즘은 하루 200명씩 온다. 특히 외국 여행에서 양고기를 먹어봤는데 맛있었다며 오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한식 퓨전 레스토랑 '밍글스'는 코스 메뉴 메인 요리에 된장에 재운 양고기 스테이크를 넣었다. 강민구 대표는 "추가비용을 내면 한우 안심으로 교체할 수 있는데도 코스 주문 손님의 40% 이상이 양고기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1년 미만 양고기가 대세(大勢)

    양고기는 중동 등에서 유목 민족의 음식으로 발달했다. 중국 위구르족은 양꼬치를 즐겨 먹고, 몽골에서는 손님이 오면 채소와 양고기를 넣어 익힌 음식인 호르호그를 준비한다. 서양에서는 고급 정찬 메뉴로 흔히 먹는다.

    국내에 양고기가 본격 시판된 것은 1978년이다. 공급 부족에 따른 '육류 파동'으로 고기 값이 급등하자 정부는 돼지고기를 대체해 보세 가공 수출육으로 보유하고 있던 호주·뉴질랜드산 양고기를 내놨다. "양념만 잘하면 쇠고기 못지않다"고 홍보했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누린내'라고 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다. 1978년 1월 24일 한 일간지는 '식탁의 새로운 미각 양고기'라는 기사에 이렇게 썼다. "우리 입맛에 익숙지 않은 누린내가 심한 편이어서 양파, 후추, 마늘, 카레 파우더 등 향신료를 많이 넣고 조리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요즘 국내에 수입되는 양고기는 이 '냄새'의 벽을 넘으면서 대중의 입맛에 다가가고 있다. 호르몬 분비로 냄새가 많이 나는 생후 1년 이상 된 '머튼(mutton)' 대신 생후 1년 미만의 어린 양 '램(lamb)'을 주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두가헌의 박현진 대표이사는 "예전엔 호텔 레스토랑에서 양고기를 맛봤던 나이 지긋한 분들만 드셨는데 요즘은 냄새가 없어 젊은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국내에 등장한 양고기는 메뉴도 다양하다. 중국식 양꼬치, 서양식 양갈비뿐 아니라 일본식 양고기 요리도 유행한다. 5년 전 서울 서교동에 문을 연 '이치류'는 삿포로식 양 숯불구이인 '징기스칸' 전문 음식점. 주성진 대표는 "중국식 양꼬치가 양 특유의 냄새를 즐기는 마니아층의 음식이라면, 징기스칸은 좀 더 대중화된 양고기 요리"라고 말했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삼겹살 대신 목살이 잘 팔리고, 쇠고기의 경우 마블링보다 숙성 고기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고기 문화가 변하고 있다. 양고기의 유행도 우리 국민들의 미각(味覺) 변화의 일환"이라고 했다.

    '양고기는 건강식'이라는 인식도 인기에 한몫한다. 실제로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사람 중에는 "지방·콜레스테롤 함량이 다른 육류에 비해 적기 때문"이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양고기의 실제 영양 성분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양갈비는 100g당 지방 함량이 돼지갈비보다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도 삼겹살, 소갈비에 비해 높다. '고기수첩' 저자인 주선태 경상대 축산학과 교수는 "양고기는 소고기와 비교할 때 지방 함량은 비슷하고, 포화지방산은 오히려 많다"며 "다른 육류에 비해 건강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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