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氣에 휩싸인 세상… 아직도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입력 2015.01.12 03:05

소설가 심상대, 첫 장편 '나쁜봄'… 안견 '몽유도원도'에 상상력 더해

소설가 심상대.
소설가 심상대(55·사진)가 장편소설 '나쁜봄'(문학과지성사)을 냈다. 1990년 등단 이후 소설집 여섯 권을 냈지만 장편은 이번에 처음 펴낸다. 소설 제목 '나쁜봄'은 형용사 '나쁜'과 명사 '봄'을 일부러 띄어 쓰지 않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이 소설은 봄마다 광기(狂氣)에 휩싸이는 상상의 마을을 그렸다. 그런 저주받은 봄을 '나쁜봄'이란 조어(造語)로 표현했다는 것. 작가는 "내 소설에 문법을 넘어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며 "아이를 낳아본 남자라면 그 마음을 이해하리라"고 답했다. "해석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라고도 했다.

소설 '나쁜봄'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리게 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펼쳐지는 환상소설이다. 병자호란을 피해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일궜다는 상상의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이 6·25에 이르기까지 간간이 세속의 이방인을 맞아들였다는 가상(假想)도 등장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펼쳐진다.

이 마을에선 사람들이 대개 180세까지 산다. 매년 정월대보름날 결혼한 남녀들이 기억을 잊는 술을 마셔 새 배우자를 맞을 수 있다. 물론 재혼을 원치 않아 백년해로하는 부부도 있다. 그러나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강제로 파경(破鏡)을 맞아야 한다. 아이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키운다. 부부와 자식으로 이뤄진 가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가족 이기주의'가 마을 공동체의 평화를 깨기 때문이다. 주민 저마다 직업은 있지만 재산과 음식은 철저하게 공유한다.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의 욕망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마다 봄이 오면 마을엔 미친 사람이 꼭 나타난다. 주민들이 재판을 해 광인을 화형에 처하는 불문율이 봄마다 되풀이된다. 개인이 이기심과 소유욕을 드러내면 광인 판정을 받아 처형된다. 심지어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술혼(藝術魂)을 밝혀도 광인으로 몰린다. 재판을 진행하는 마을 지도자는 사상을 통제하는 독재 권력을 휘두른다. "상상은 생각과 정신의 부패한 현상이라네. 이기심과 자존심의 다른 양상이지. 우리 고을에선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선 안 된단 말일세."

동양의 이상향을 담은 안견의 산수화‘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동양의 이상향을 담은 안견의 산수화‘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작가 심상대가 이 그림에 상상력을 덧씌워 장편소설을 썼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러나 무릉도원에서도 어느 날 살인 사건이 터진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노인 부부가 참혹하게 살해된다. 마을 지도부가 사냥꾼을 시켜 범인을 추적한다. 수사 초기에 남녀 범인을 붙잡아 자백을 받지만 그들은 진범을 숨기기 위해 자살하거나 묵묵히 화형을 받아들인다. 진범은 누구이고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를 캐는 가운데 '인간의 이상향(理想鄕)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다룬다. 환상과 추리와 관념이 뒤섞여 색다른 맛을 내는 소설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