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를 구상한 김석철(71)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북한 경제를 살리고 통일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려면 뭔가 돌연변이같이 혁신적인 일이 '꽝'하고 일어나야 한다"며 "이런 불길을 일으킬 불쏘시개나 관솔(송진이 많아 등불의 재료로 쓰이는 소나무 가지)이 바로 두만강 다국적 도시이고 또 다른 것이 DMZ(비무장지대) 개발"이라고 말했다.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에서‘두만강 다국적 도시’설계 모형을 들고 도시 건설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두만강 다국적 도시는 북한의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통일은 급작스럽고 혁신적 변화(quantum jump)를 일으킬 계기가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여의도 개발 마스터 플랜과 예술의 전당, 쿠웨이트 자흐라 신도시, 베이징 경제특구, 인천 밀라노 디자인 시티 등을 설계한 도시 디자인의 권위자다.

그는 "과거 울산처럼 한 도시를 개발하면 대규모 고용이 이뤄지고 그 효과가 주변 지역으로 파급된다"며 "두만강 다국적 도시는 북한을 변화시키고 통일을 앞당길 불씨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21세기 최적의 교역 인프라는 고속철도와 선박, 비행기가 만나는 곳"이라며 "그것을 모두 갖춘 천혜의 장소가 바로 두만강 하구"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조선 초 두만강 유역에 6진을 설치한 김종서 장군은 '이 땅을 개척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은 없다'고 했고, 1905년 러·일전쟁 발발 직전 러시아 총사령관도 '조선을 잃으면 아시아를 잃는다'며 연해주로 군대를 보냈다"며 "유라시아 대륙이 태평양으로 나오는 길목을 꽉 잡고 있는 두만강 하구는 지중해의 지브롤터나 보스포루스 해협과 같은 전략적 요충지"라고 했다. 따라서 이곳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터키의 이스탄불,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같은 해상 도시를 만들면 세계 교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중국 훈춘시와 북한 나선시 원정리를 잇는 두만강대교 옆에 신(新)두만강대교 교각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지난 11월 북한 나진항 3호부두에서 한국으로 수송될 러시아산 유연탄이 선적되고 있는 모습.

특히 두만강 하구에는 만포·동번포·서번포 등 겨울에도 얼지 않는 석호(바닷물이 섞인 해안호수)가 많아 운하로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두만강 하구는 국제적 자본을 끌어들여 큰 판을 벌일 수 있는 곳"이라며 "중국 학자들도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있고 일본도 이곳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것이 태평양 쪽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는 두만강 다국적 도시를 고종 황제의 '아관파천'과 같은 프로젝트라고 했다. 미·중의 대립 구도 속에서 러시아를 끌어들여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는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유럽보다 한국 등에 파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중·러 정상과 친밀하기 때문에 3국 공동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