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감춰진 왕실 여성의 진짜 삶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입력 2014.12.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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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역사를 지켜온 왕실여성|신명호 등 10명 지음|글항아리|484쪽|2만6000원

    망국(亡國) 직전의 춘삼월(春三月)도 여느 봄날과 다르지 않았다. 1906년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비(妃)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주관으로 친잠례(親蠶禮) 행사가 열렸다.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궐내 후원에 설치된 잠실(蠶室)에서 왕비가 손수 누에에게 뽕잎을 주는 이 행사에는 당상관 이상 관리의 부인과 궁녀들이 참석했다.

    1906년 순정효황후(가운데) 주관으로 열린 친잠례 행사.
    1906년 순정효황후(가운데) 주관으로 열린 친잠례 행사.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국립고궁박물관이 기획하고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등 사학자 10명이 집필한 이 책은 왕비의 간택과 책봉부터 출산과 수렴청정, 궁녀의 생활과 복식(服飾)까지 왕실 여성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태어난 총 자녀 수는 273명이었다. 조선 최대의 다산왕은 자녀를 29명 둔 태종이었고, 왕비와의 사이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은 세종이었다. 세종비(妃) 소헌왕후는 대군 8명과 공주 2명을 낳았다.

    궁녀들이 처음 입궁하면 섣달그믐날 저녁 대궐 뜰에 세워놓고 무시무시한 신고식이 열렸다. 환관들이 횃불을 들이대고 입을 지지는 시늉을 하며 "쥐부리 지져!"라고 위협했다. 비밀이 많은 궁궐에서 입조심을 강조하는 의식이었다. 왕과 왕비가 자는 침실 주변에서 뜬눈으로 지키는 지밀나인은 낮 근무조와 밤 근무조로 나뉘어 12시간씩 격일제로 근무했다. 최고 위치인 제조상궁은 매달 쌀 25말 5되, 콩 6말, 북어 110마리를 받았고 연말이나 명절에는 특별 상여금도 받는 '고액 연봉자'였다. 하지만 궁녀들이 종친이나 관리, 환관과 연애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거나, 궁녀 사이의 동성애 사건으로 70~100대씩 곤장을 맞는 스캔들도 종종 일어났다. 궁녀들에게 사랑이 허용된 순간은 "오직 왕이나 세자의 손길이 닿을 때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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