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 작품 그 도시] 길 잃는 방법에도 나만의 철학이 있다

조선일보
  • 백영옥·소설가
    입력 2014.12.27 03:00

    책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교토

    뽀빠이 이상용이 대한민국 국군 장병의 친구라는 말이나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분명 내 또래 사람일 거다. 그가 한 몹시 웃기는 말 중 하나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광주에 가려던 한 할머니가 고속버스에 올라 실컷 잠을 자고 나서 눈을 떠보니 대구였다. 버스의 승객이라곤 자신과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자느라 정신 줄을 놓은 젊은이 한 명뿐이었으니 말을 말자. "시방 이게 대체 우찌 된 겨? 이게 뭔디?" 놀란 광주 할머니가 대구에서 알게 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의문에 대한 답은 버스 기사에게 있었다. 대구행 버스 기사가 광주행 버스를 대구행 버스로 착각하고, 그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돌진한 것이다. 그럼 대구행 버스 기사는 어디로 간 걸까? 설마 광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를 보면 이런 말도 있다. "게다가 버스나 전철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이 패거리들은 예의도 없거니와 행동도 난폭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로마의 버스는 가끔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한다!"

    일본 교토(京都)의 니조성. 일본 교토로 여행을 가기 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을 읽은 백영옥은 “안개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아름답지만 막상 내게 닥치면 까막눈이 된 기분이 된다”고 했다. / 우승봉 기자
    이런 종류의 글은 여행을 앞둔 사람을 심란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가기 전 바로 이 책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을 읽었다. 얼핏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 책의 확실한 콘셉트는 '의도적으로 길 잃기'라는 주제로 시작된다.

    "지도로 무장하면 여행자의 세계는 축소된다. 세계를 파악하는 기준으로 지도를 선택하면, 대도시든 황무지든 모든 세계는 한정적 정보만을 담고 있는 곳이 된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만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는 1제곱미터마다 아주 흥미롭고 세세한 것을 수도 없이 담고 있다. 길 잃기는 이런 기발한 것들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또 부족한 방향 감각을 보완하기 위해 두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게 된다."

    대부분의 여행자 정보가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일찍 도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어떻게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지도의 세계에서 벗어날까를 탐구한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길을 잃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않을까'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 격투기를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낙법', 바로 넘어지기 기술이다. 카약을 타는 사람은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거나 피하는 방법 대신, 카약이 뒤집어졌을 때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기술을 제일 먼저 연습한다. 같은 이유로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방향감각을 찾는 법을 연습하면 된다. … '길 잃기'를 마스터한 사람은 길 잃는 것이 즐거울 것이고, 길을 잃게 되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그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이건 어쩐지 나 같은 길 잃기 전문가에겐 복음 같은 말이었다. 나는 낙법을 배우듯 길 잃기 초보자들에게 권하는 방법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 가령 남 따라가기, 다음 골목으로 가기, 지도 던지기. 지도는 목적지로 가는 중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특유의 기능 때문에 가끔 우리를 맥 빠지게 하기도 한다. 마치 줄거리와 결말까지 다 아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중급자 과정과 고급자 과정은 나 같은 소심한 겁쟁이에겐 엄두도 못 낼 일처럼 보였다. 구조, 조난, 생존 같은 말은 '극기'나 '극복' 같은 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얘기를 읽다가 나는 길 잃기에 매혹당했다.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어둠 속을 헤맬 때, 어둠이 한순간 탁 걷혀 시야가 밝아지는 일은 없다. 초보자에게 안개는 어둠이나 마찬가지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철학적 요소다. 즉 사람들이 인식하는 바로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세계에 대해 아주 적은 것만 알고 있다. 일부는 무관심과 무지 때문이고, 또 일부는 자기장이나 소리를 통한 위치 파악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소가 아니라, 중요한 사실들을 암시하며 자신을 훈련시키는 요소다."

    책의 중반부를 넘어 처음에 쓴 에피소드와 유사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박장대소했다. 우리는 가끔 익숙한 길에서도 길을 잃는다. 왜 그럴까? 잘 알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머릿속' 지도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것은 외부 세계의 간과할 수 없는 특징들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인 마이클 브라운과 케이트 로저스는 2001년 스페인의 히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수로 제노바를 예약한 상태였고, 그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알다시피 제노바는 이탈리아에 있다. 지금 밀라노 상공을 통과하고 있다는 조종사의 안내 방송을 들었을 때도 그들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걸려 있는 이탈리아 국기는 그저 아이스크림 가게 깃발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요금으로 낸 스페인 화폐 페세타를 버스 기사가 거절할 때 비로소 두 사람은 옆 승객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어느 나라죠?' 유로화가 도입된 후 휴가를 갔더라면 그들은 2주 내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본 교토에 가기 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결심했다. 계획 따위 세우지 말자, 의도적으로 길을 잃자(나는 타고난 길 헤매기 전문가다!), 낯선 돌발을 즐기자, 숙소 따위 예약하지 말자, 내키는 대로 머물자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떠나는 크리스마스 전후가 새해를 이국에서 맞을 수 있는 '극성수기'임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오사카와 교토의 모든 호텔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평소보다 서너 배 비싼 돈을 치르고 나서야 나는 빈방 몇 개를 간신히 찾아냈다.

    안개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시적이고 아름답지만, 막상 내게 닥치면 까막눈이 된 기분이 될까.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고 해서 수영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언제라도 '길 잃기' 게임을 끝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길 잃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 때문일 거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가 함께 쓴 여행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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