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의 '신데렐라'는 상무의 스트라이커 이정협(23)이었다.
울리 슈틸리케(60·독일) 축구 대표팀 감독은 22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이정협의 이름을 올려놓으며 "경험이 풍부한 박주영을 선택했다면 수월한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박주영 대신 택한 이정협의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내가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제주 전지훈련(15~21일)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상무 경기를 다섯 차례 지켜봤는데 움직임이 흥미로웠다"며 이정협의 소집 이유를 설명했던 슈틸리케가 전지훈련 기간 보여준 그의 경기력에 합격점을 내린 것이다.
이정협은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전격 발탁된 박지성,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을 앞두고 조광래호에 이름을 올린 이용래 등 역대 대표팀의 그 어떤 '깜짝 발탁'보다 파격적인 대표팀 승선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정협은 지금까지 A매치는 물론 연령별 국가대표팀 경기에 단 한 번도 나서본 적이 없다. 올림픽 대표팀의 한 코칭 스태프는 이정협에 대해 묻자 "잘 모르는 선수"라는 답을 하기도 했다.
작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정협은 올해 상주 유니폼을 입고 25경기에서 4골을 넣었다. 그중 11경기를 교체로 출전했다.
◇압박에 능한 원톱 공격수
다양한 전술 옵션을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달부터 K리그 선수들을 관찰하다가 이정협을 깜짝 발탁했다.
이정협은 키 186㎝, 몸무게 76㎏의 건장한 체격에도 100m를 12초에 주파할 정도로 스피드가 좋다. 부산 동래고에서 이정협을 지도했던 송세림(35) 감독(당시 코치)은 "당시 원톱이었던 (이)정협이에게 적극적인 압박 수비를 주문해 골을 많이 넣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면서도 "다른 선수들보다 활동량이나 동료를 살리는 희생적인 움직임이 뛰어나 지도자 입장에선 매우 매력적인 공격수"라고 말했다.
◇배고픔과 열정이 그를 키웠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발이 빨랐던 이정협은 축구를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정협의 어머니 배필수(56)씨는 "화물선을 타는 정협이 아버지와 식당에서 일하는 내 수입으로는 운동을 뒷바라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정협은 어린 시절부터 싸움 한 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온순한 성격이었지만 축구에서만큼은 고집을 부렸다. 어머니 배씨는 "차라리 다른 집 아이들처럼 게임에라도 푹 빠져서 축구를 잊길 바라는 마음에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270만원짜리 컴퓨터를 사줬다"며 "하지만 컴퓨터는 쳐다보지도 않고 매일 축구부에서 연습하는 아들을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했다.
부산 당감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정협은 덕천중과 동래고(당시 부산 유스팀)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면서 부산 아이파크에 우선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숭실대에 다닐 때까지도 그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를 누비곤 했다. 배씨는 "유명 브랜드의 축구화 한번 제대로 사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대표팀 꿈을 이루니 감격스럽다"고 했다.
이정협의 원래 이름은 이정기(廷記). 무난한 이름의 무난한 선수로 남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해 12월 작명관에 가서 '욕구가 충만하고 강한 성향'의 이름이라는 정협(庭恊)을 새로 받았다. 이정협은 "우연인지 몰라도 이름을 바꾼 뒤부터 엄청난 행운이 찾아와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타깃(target)맨
축구에서 최전방 붙박이 스트라이커를 일컫는 말. 상대 수비수의 집중 견제를 받기 때문에 강한 체력과 몸싸움, 뛰어난 볼 키핑(keeping) 능력이 타깃맨의 첫 째 조건이다. 스웨덴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리 생제르맹)처럼 득점 감각이 뛰어난 '해결사' 유형의 타깃맨이 있고, 프랑스의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처럼 동료를 적극 활용하는 타깃맨도 있다. 이정협은 후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