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高大교수 성추행 피해자 어머니 단독 인터뷰…“공부 욕심에 눈 반짝반짝 하던 내 딸, 약 없이 제대로 먹고 잘 수만 있어도”

입력 2014.12.19 10:16

지난 12월 9일 오후 6시 서울 신촌의 한 식당. 기자는 인터뷰를 하기로 한 대상을 기다리면서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며 사형수를 비롯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별별 사람을 다 만나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인터뷰 대상과 약속장소가 신촌으로 정해진 것은 하루 전. 전남 광양에 사는 J씨는 이날 대학원생 딸이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날이어서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J씨와의 인터뷰를 하루 앞두고 질문지를 만들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읽었지만 이상하게 질문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인터뷰 당일이 되자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대학생 딸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J씨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또 어떻게 건네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침에 몇몇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의 대답은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라”였다.

J씨는 고려대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50)이고, 딸은 고려대 산업공학과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휴학생이다. 약속시간에 J씨는 친구와 함께 도착했다. 친구는 중간에서 J씨와의 인터뷰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다. J씨는 얼굴이 몹시 야위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J씨는 광양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딸을 돌보기 위해 이틀 전 직장을 그만뒀다.
고려대 교수 성추행 피해자 어머니 J씨가 인터뷰 도중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고 있다.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고려대 교수 성추행 피해자 어머니 J씨가 인터뷰 도중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고 있다.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딸은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산업경영공학과 10학번으로 입학했다. 딸은 하숙을 하다가 4학년 때부터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J씨에 따르면 딸은 대학 1학년 때는 전공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2학년 때 ‘최적화 수업’을 듣고서 그 과목에 매료가 되었고, 2012년 여름방학 때 ‘최적화 대학원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가 경력을 쌓았다. 고려대 공대 대학원에서 최적화 대학원 연구실은 힘들기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딸은 잘 견뎌냈다. 2013년 여름 대학원 조기입학전형에 합격해 조기입학장학생에 선발되었다. 이어 올해부터 최적화 연구실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하며 국가장학금(GPF)도 받았다. 석·박사통합과정 대학원생은 모두 6명. 여학생은 J씨 딸 혼자였다. 딸은 1학기를 마치고 현재 휴학 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딸이 지도교수 이모씨에게 3개월간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한 것을 부모가 확인한 시점은 지난 9월 25일이었다. 광양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54)이 상경해 서울역에서 딸을 만난 날이었다.

- 지금 따님의 상태는 어떤가요.
“조금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병동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끝나면 딸이 있는 병실로 가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딸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깊은 친밀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말 못하는 깊은 이야기도 어머니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 딸이 그전에 틀림없이 어머니한테 자신의 상황에 대한 어떤 암시를 했을 텐데, 뭔가 이상한 게 없었나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지난 추석에 내려왔을 때 조금 애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몸이 무척 야위었고 얼굴도 새카맣게 변해 내려왔어요.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지요. 무슨 일 있냐고 물었는데, 본인이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전혀….”

- 그때 딸이 뭔가 어머니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요.
“제가 하루는 일을 끝내고 피곤해서 잠깐 낮잠을 잔 일이 있어요. 자다가 눈을 떴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딸이 자고 있는 저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너 무슨 일 있냐고 물었죠. 딸이 ‘아니야, 별일 아니야. 엄마 보니까 좋아서’라고 대답했어요. 그러곤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바짝 붙들고 물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하고 J씨는 고개를 숙이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눈가가 벌겋게 변했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북받치는 눈물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참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추석 때 내려와서 한 일주일 쉬다가 올라갔는데, 그렇게 서울에 가기 싫어했습니다. 내가 이것저것 준비해서 올려보내는데 올라가기 싫어했어요.”

- 그전에는 지도교수와 관련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요.
“지난 5월 딸이 폐렴에 걸려서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폐렴이 하도 심해 병원에 며칠 입원시켜 치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애가 병실에서 힘들어 하는데도 교수가 쉴 새 없이 전화·카톡·문자를 보내왔어요. 애가 단 30분도 편히 있게 놓아두질 않았어요. 계속 영상통화를 요청했어요. 지도교수가 애를 꼼짝 못하게 하는데 애는 힘들어 하면서도 감히 교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J씨는 딸을 통해 이 교수가 연구실에서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를 하나씩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대학원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사적인 일에까지 대학원생들을 수족(手足)처럼 부렸다. 최근의 사례로는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자 이 교수는 일주일간 연구실에 애도기간을 정해 대학원생들에게 이를 따르도록 했다.

- 왜 따님이 교수의 표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딸은 공부밖에 몰랐어요. 공부 욕심이 컸어요. 연구실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나오면 죽는 줄 알았던 아이예요. 더군다나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 혼자 사니까. 국가장학금을 받고 있으니까 감히 저항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딸은 대학원을 휴학했다. 대학원생의 휴학은 지도교수의 서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교수는 9월부터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어 휴학 서류에 ‘OK’ 사인을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구두 OK로 딸은 휴학처리가 됐다. 딸은 지난 10월 24일 이 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고려대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했다.

-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하면서 어떻게 기대했습니까.
“양성평등센터에서 조사해 교수를 처벌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딸은 휴학한 이후 집으로 와 부모와 함께 지냈다. 비로소 J씨는 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옆에서 보니 아이가 잠을 거의 못 자면서 괴로워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교수한테 당한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는 겁니다. 가슴을 쥐어 뜯고, 숨도 못 쉬면서…. 그때 비로소 예상했던 것보다 (성추행) 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과 상의해 교수를 민형사 고발을 하기로 한 겁니다.”

딸은 이 교수를 11월 6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성추행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에 이 교수는 11월 7일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학교 측은 11월 26일 사표를 수리했다. 사표 수리와 동시에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는 종료됐다. 이 교수는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퇴직금·교원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교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교수는 “성추행은 전혀 없었고 스승과 제자의 연애일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교수의 사표가 수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고려대 대학원 학생회와 고려대 총학생회는 교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학교 측의 성추행 교수 비호를 성토하고 있다.

- 고려대 측이 이 교수의 사표를 즉각 수리할 줄 몰랐나요.
“전혀 예상 못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는 받게 할 줄 알았지요. 우리 아이만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고려대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조사를 받을 때까지 사표를 수리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빨리 사표가 수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교수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이제 자기네 식구가 아니니까 밖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지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성추행 등 성범죄 사건은 드러내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대부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주종관계에 있는 지위가 낮은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 피해자는 학업은 물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싸워야 한다. 성범죄는 대부분 증거가 부족한 관계로 가해자들은 발뺌을 하거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상투적 술책을 쓴다. 고려대 성추행 교수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다.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서울대 강석진 교수 성추행 사건의 경우 서울대 측은 사표 수리를 하려던 방침을 바꿔 양성평등센터가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강 교수는 해임되었고 구속수감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가 거의 매일같이 고려대 측의 처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대학이라는 거대집단이 피해자인 여학생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고려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솔직히 어디까지 각오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성추행 교수를 응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민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 말하곤 J씨는 다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실룩거리며 파르르 떨렸다. 또다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처음엔 아이가 휴학을 끝내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J씨는 다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가렸다.

- 혹시 지금 싸움이 아무 소득 없이 딸아이만 피해를 입은 채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예, 해봤죠. 아이 아빠의 교수 친구가 ‘그만해라’는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교수사회가 똑같은 사람들이라 자기네끼리 덮어주고 하기 때문에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고요. 아이 여기서 살게 하고 싶으면 그만하라고 했답니다.”

- 솔직히, 이쯤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여기서 그만두면 아이가 어떻게 되겠어요? 끝까지 해서, 우리가 이 나라를 뜨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이한테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우리 아이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명문대 교수라는 사람이 교수라는 권력을 이용해 아이에게 저런 나쁜 짓을 했는데 어떻게 용서를…. 뭐, 아이와 연애를 했다고요? 차라리 치한한테 당했으면 이렇게 분개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한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나중에 그 원망을 어떻게 듣습니까? 실형을 얼마 받지 않더라도 죄값을 치르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 서울대는 사표수리 방침을 철회하고 성추행혐의자 강석진 교수를 조사받게 했고, 결국 구속기소가 됐는데요.
“그래도 서울대는 서울대라고 생각했어요. 서울대는 자존심이라도 있구나 하고. 그런데 고려대는 어린 여학생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거 같아요.”

- 형사고발을 했으니 법정에 서야 할 텐데, 지금 따님은 어떤 입장입니까.
“솔직히 우리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해서 다 덮고 너만 치료하고 가는 게 어떻겠니라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이제 딸이 달라졌어요. ‘내 동생도 여자인데, 여자아이들이 공부 편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합니다. 자기는 그래서 끝까지 해야겠다는 겁니다.”

- 지금 대한민국의 딸 가진 부모들이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교수라는 사람에게 우리 아이 24시간 일상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어요. 공부 욕심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 우리 아이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지금 우리 아이는 밥도 못 먹고 제대로 잠도 못 잡니다. 먹으면 토하고 진이 빠진 상태에서 약 먹고 잠을 잡니다. 24시간 중 18시간을 잠만 잡니다. 잠만 자면 교수가 나타나는 악몽을 꿉니다. 그렇잖아도 몸이 약한 아이인데 몸무게가 7㎏이나 빠졌어요. 나는 지금 우리 아이가 밥 잘 먹고 잠 잘 잘 수 있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2시간 반에 걸친 ‘힘겨운’ 인터뷰가 끝났다. J씨는 식당을 나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J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려대는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1960년 4·18궐기를 커다란 자부심으로 여긴다. 고려대는 불의(不義)에 항거한 4·18정신을 기리기 위한 여러 행사를 5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교수사회는 짓밟힌 여학생의 인권에 침묵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지금 불의와 타협하는 지성의 타락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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