蔣介石의 대일항쟁 덕분에 毛澤東이 기회를 잡았다

조선일보
  • 김기철 기자
    입력 2014.12.13 03:14

    '장제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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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제스 평전|조너선 펜비 지음|노만수 옮김|민음사|736쪽|3만8000원

    '유리창에 총알이 숭숭 박혔다. 총탄이 요란하게 빗발치는 가운데 장제스(蔣介石)는 뒤쪽 창문을 넘어 달아났다.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제복과 신발과 틀니를 남겨둔 채 줄행랑쳤다.'

    1936년 12월 12일 새벽, 당 현종과 양귀비가 머물렀던 시안(西安) 화청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중국 집권당 지도자 장제스는 허둥지둥 뒷산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곧 만주군벌 장쉐량이 이끄는 군인들에게 납치됐다. 장제스를 압박해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항일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장제스는 13일 후 풀려났고, 약속대로 항일전쟁에 나섰다. 국민당 정부의 포위공격으로 전멸 위기에 놓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은 궁지에서 벗어나 1949년 중국 대륙을 차지했다. 시안사변이 없었으면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옵서버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편집장 출신 중국 전문가 펜비(Fenby·72)가 쓴 이 평전은 장제스가 남긴 일기와 당시 언론 보도 등 1차 자료와 연구서는 물론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통해 현장감과 디테일이 풍부한 게 장점이다.

    장제스는 소금장수 아들로 태어나 청년 혁명가로 성장하면서 중화민국 국부(國父)인 쑨원의 신임을 얻었다. 쑨원이 깃발을 든 북벌을 이어받아 중국을 통일하고 근대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장제스의 생애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장제스는 공산중국 수립 후 '부패한 국민당 정권 지도자' '무자비한 권력자'로 몰려 비난받았으나, 요즘 중국에서도 재평가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장제스가 이끈 국민혁명군이 없었다면 지방 군벌을 통제하고 중국을 통일하는 북벌의 성공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1928년 출범한 난징 국민정부도 청조 붕괴 후 중국을 근대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첫 번째 시도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정부의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못했고(지방 군벌의 비협조가 한몫했을 것이다) 부패가 발목을 잡았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항일전쟁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장제스는 방관하고 좌시했다는 것도 잘못된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장제스는 알려진 것보다는 대일(對日)항전에 열심이었고, 항일전의 손실도 공산당보다 국민당이 훨씬 더 컸다. 로이드 이스트만의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와 레이 황의 '장제스 일기를 읽다'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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