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꿴 발(블라인드), 전통을 드리우다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4.12.11 05:32 | 수정 2014.12.11 09:03

    '어둠속의 대화' 북촌 체험관… 설계 건축가 장영철·전숙희
    "북촌의 전통 살리려한 '발' 시각장애 직원 은유하기도"

    부부 건축가 장영철(왼쪽)·전숙희 와이즈건축 공동대표.
    /장련성 객원기자
    전통 한옥이 옹기종기 이웃한 서울 가회동. 나무 문창살, 비둘기빛 기와가 자아내는 이 동네 운율에 파격이 등장했다. 가회동 성당, 김영사 사옥이 늘어선 북촌로 대로변에 '발을 드리운 건물'이 최근 들어섰다. 짙은 갈색 철제 발 27개가 올록볼록 높낮이를 달리해 폭 25m의 3층 건물 전면(前面)에 매달렸다. 북촌 한옥 마을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뜻밖의 풍경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입구 벽면, 양각으로 또렷이 새긴 건물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발 뒤에 가려진 건물의 정체다. '어둠 속의 대화'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100분 동안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의존해 공간을 느끼는 체험형 전시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됐고, 국내에선 네이버가 시각장애인을 고용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인 '엔비전스'가 2010년 들여왔다. 건물은 전시를 위한 맞춤형 체험관이자 엔비전스 사무 공간. 2층엔 '사회적 레스토랑'을 내건 식당 '떼레노'가 있다. 노숙자와 불우 청소년을 셰프로 양성하는 곳이다.

    처음부터 특정 전시를 위한 상설관으로 지은 건물인 데다, 북촌 금싸라기 땅에 둥지 튼 '사회적 기업 허브'다. 이 독특한 입지와 성격을 지닌 건물의 설계자는 부부 건축가 장영철(44)·전숙희(39) 와이즈건축 공동대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상'을, 2012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실력파다.

    "발은 건물의 주인공인 '어둠'을 상징하면서도 북촌에 깃든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 착안한 장치였습니다.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의적 의미도 담겨 있고요." 새집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건물에서 만난 두 건축가가 말했다. 발은 영어로 '블라인드(blind)'인데 이는 '보이지 않는 이들'도 뜻한다. 건물에 입주한 시각장애인 직원들을 은유하기도 한다.

    발은 일일이 손으로 뀄다. 구슬을 꿰어 만든 갓끈처럼 철제 살 사이에 구슬을 넣고 철사로 이었다. 전통 기법을 담아 최대한 수공예적인 건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결국 발은 건물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견고한 막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 밝음과 어둠, 장애와 비장애를 잇는 '열린 막' 같은 존재다.

    손으로 일일이 꿴 철제 발 27개를 외벽에 매단‘어둠 속의 대화’북촌 체험관. 발은‘어둠’이 주인공인 건물을 상징하는 수단이자, 북촌에 깃든 전통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장치다.
    손으로 일일이 꿴 철제 발 27개를 외벽에 매단‘어둠 속의 대화’북촌 체험관. 발은‘어둠’이 주인공인 건물을 상징하는 수단이자, 북촌에 깃든 전통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장치다. /장련성 객원기자
    전통이 깃든 북촌은 젊은 건축가들에겐 기회인 동시에 부담스러운 입지였다. 이들은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首善全圖)를 꺼내놓고 과거 지형을 연구했다. 사료를 통해 북촌로가 물길이었고, 건물이 들어서는 땅이 한때 갑신정변을 도모했던 박영효의 소유지였던 사실도 알게 됐다. 여기에 서쪽이 동쪽보다 16m 높고 암반이 버티고 있는 대지의 녹록지 않은 조건도 고려해, 외부 계단은 뒷산에서부터 내려와 건물을 감싸는 계곡처럼 완만하게 만들었다. '마른 계곡'이라 불리는 이 계단엔 회당 8명만 받아 '느린 소통'에 중점을 둔 전시의 특성도 반영했다.

    그럼에도 한옥 동네의 흐름을 깨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들은 "북촌에 들어선 도시형 한옥은 1920~30년대 전후로 집중적으로 들어섰고, 같은 시기 중앙고등학교 같은 근대 건축물도 함께 세워졌다.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것이 북촌의 참모습 아닌가 한다"고 했다. 견고한 전통을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간 이 건축가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북촌에 느릿하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 하나를 넣었다고 생각해달라"며 몸을 낮췄다.

    ▷'어둠 속의 대화' 전시 문의 (02)313-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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