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문맹(漢字文盲) 벗어나자] 단통법·행복도시… 한자 표기 없으니 略語 뜻 '깜깜'

    입력 : 2014.12.10 04:47

    [24] 한글로만 쓰는 한자 약어

    "'지재권'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 함께 출장을 가느라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던 대학교수가 벽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지적재산권(知的財産權)의 약어'라고 했더니 "말을 줄여 쓰려고 했다면 '知財權'이라는 한자를 드러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한자어의 약어조차 한글로만 쓰다 보니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사라지는 현상이 자주 보인다.

    '도정제'와 '도정법'은 다른 의미?

    긴 명칭이 붙여지기 일쑤인 법률이나 제도 용어일수록 줄여 쓰는 일이 잦지만,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용어들 중에선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약어가 많다. "도정제 시행을 앞두고 출판·유통 업계가 할인 판매에 열을 올렸다" "단통법이 온전히 시장에 자리 잡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장에선, 사전 정보가 없다면 아무리 문맥을 살펴봐도 '도정제'와 '단통법'의 의미를 알기 어렵다. 도정제(圖定制)는 '도서정가제(圖書定價制)', 단통법(端通法)은 '단말기(端末機) 유통구조(流通構造) 개선법(改善法)'을 줄인 말이다. 도정법(都整法)은 '도시(都市) 및 주거환경(住居環境) 정비법(整備法)'으로, '도정제'와는 다른 내용이다.

    한글로만 쓰면 뜻을 알기 어려운 약어 정리 표

    '아청법'과 '경단법' 역시 최근 뉴스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한글로만 써서는 이해가 어렵다. 아청법(兒靑法)은 '아동(兒童)·청소년(靑少年)의 성보호(性保護)에 관한 법률(法律)'이며, 경단법(經斷法)은 '경력단절여성(經歷斷絶女性) 등의 경제활동촉진법(經濟活動促進法)'이다.

    법제처에서는 지난달 660개 법률명의 약칭을 통일하는 '법률 제명 약칭 기준'을 마련했지만 "단통법 대신 단말기유통법이라고 쓰라"는 등 현행 약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가 많이 들어 있다. '제명(題名·표제나 제목의 이름)'이란 말도 한글로만 쓰니 뜻이 모호해졌다.

    '생과부' '문상'은 무슨 뜻?

    줄인 말을 한글로만 쓰면 원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다. '여가부'라는 정부 부처는 여성가족부(女性家族部)의 약어다. 그러나 여가부가 게임 활동 규제 법안을 추진하면 "왜 여가부가 여가(餘暇) 생활을 규제하느냐"는 말도 나온다. 대학 학부나 언론사 부서 이름인 생활과학부(生活科學部)를 '생과부'로 줄여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문화상품권(文化商品券)을 '문상'으로 쓰는 예가 뉴스 기사에서도 나타난다.

    전혀 다른 뜻을 연상시키는 약어가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할 만한 경우도 있다. 행정중심 기능의 자족형 복합도시를 말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行政中心複合都市)는 정부에서 '행중도시'가 아니라 '행복도시'로 줄여 썼는데, 여기에는 '새로 건설하는 행복(行複)도시에 살면 행복(幸福)해진다'는 것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勤勞者) 재산형성(財産形成) 저축(貯蓄)'의 준말인 '재형저축'은 1990년대 중반 이전에 유행했던 금융상품으로, 당시에는 '財形貯蓄'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 의미가 분명했으나 17년 만에 부활하고 보니 한글 표기만 남다시피 했다. 전문가들은 "긴 용어의 한 글자씩만 따서 쓰는 약어는, 줄이고 나서도 의미가 남는 한자의 조어력(造語力)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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