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ED 기판유리를 만드는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제조팀은 지난해 경북 구미 시내 뷔페 식당에서 송년회를 했다. 지난 5일 올해 송년회 메뉴는 삼겹살과 돼지고기 수육 40인분이었다. 회식 장소는 시내 한 실버하우스. 홀몸 노인 23분이 모여 사는 그곳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직원들이 고기를 굽고 색소폰 연주를 했다. 실버하우스 손종호(51) 원장은 "오랜만에 바깥 사람들을 만난 어르신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여느 노래방보다 분위기가 더 흥겨웠다"고 말했다. 20명의 직원이 1인당 3만원씩 나온 연말 회식비로 잔치를 벌였다. 음식을 장만하고 남은 30여만원으로 휴지와 세제, 쌀을 구입해 실버하우스 살림에 보탰다.

이날 송년회를 앞두고 '그래도 송년회인데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으쌰으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썰렁할 것 같다'는 반대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두연(48) 제조그룹장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에 먹고 즐기는 것보다 좀 더 뜻깊은 송년회를 하자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봉사를 하니 술 마시고 노는 송년회보다 동료나 선후배들이 하나의 목표로 더 똘똘 뭉쳐지더라"고 말했다.

먹고 마시는 송년회가 재능 기부나 봉사 형식의 ‘착한 송년회’로 바뀌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소외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밥 퍼주기’ 봉사를 벌였던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왼쪽)는 올해도 기부 형식의 송년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5일 산타클로스로 변장한 삼성코닝 직원들은 경북 구미 지역 노인들에게 고기를 대접했고(가운데), 미술학원 영렘브란트코리아는 7일 다문화가정 어린이 40명을 초대해 미술을 가르치는 재능 기부 송년회를 가졌다.

12월 송년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주류와 숙취 해소 음료 판매량이 천장을 치고 식당마다 예약이 들어찬다. 올해도 우리 사회는 술기운 없이는 송년회 시즌을 통과하기 힘들 듯하다. 지난 5일 한 취업 포털이 전국의 성인 7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58.5%가 '술자리 등 음주가무를 즐기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한 추모 분위기, 불황이 낳은 양극화를 고려해 '올해는 다르게 해보자'는 움직임이 있다. 직원들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 재능 기부 혹은 봉사활동을 하거나, 송년회 비용을 아예 기부하는 '착한 송년회'들이다.

지난 7일 오후 미술학원 체인인 영렘브란트 경기 오산센터엔 전국 가맹학원장 25명이 모여 특별한 송년회를 열었다. 이웃에 사는 5~10세 다문화 가정 어린이 40여명도 초대됐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유치부와 초등부로 나눠 두 시간 동안 미술 수업을 했다. 중국인 어머니를 둔 김모(10)양은 아빠·엄마와 크리스마스 파티하는 모습을 그렸다. 김양은 "평소 학교에선 크레파스만 썼는데 오늘은 물감·파스텔을 이용할 수 있어 좋다"며 즐거워했다. 미술 수업이 끝난 뒤엔 음료수와 과일, 과자를 놓고 단출한 파티를 열었다. 오산센터 진혜영(34) 원장은 "평소 교육 때 다른 지역 원장님들을 만나지만 서먹했다"며 "오늘 직접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술기운에 기대는 방법보다 더 빨리 친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올해 송년회는 '사랑의 밥 퍼주기'다. 협회 회원사 CEO들과 임직원 300여명은 오는 22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와 함께 1000여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간 술을 곁들인 송년 만찬을 했던 협회 측은 "지난해부터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에 벌어지는 '갑을(甲乙) 논란'이 사회적인 이슈로 번지면서 송년회를 봉사활동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협회 사회봉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익수 채선당 대표는 "먹고 마시는 일보다 설거지하고 식판 나르다 보면 봉사하는 보람을 얻기 때문에 직원들도 매우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통장들은 "송년회 규모를 줄이고 대신 나눔 행사를 하자"며 라면 210박스를 사회복지사들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400만원 상당의 라면 값은 자체 회비를 통해 조달했다. 통장단장협의회 윤규옥 회장은 "매년 고깃집에서 송년회를 했는데 올해만큼은 남을 생각하는 송년회를 하자는 데 모두 동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