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파격이다. 비혼모(非婚母), 결혼을 거부한 채 육아를 책임지는 자발적 미혼모를 일컫는다. 지난 9월 27일 시작해 4회를 남겨 놓은 TV조선 토요 드라마 '최고의 결혼'의 잘나가는 종편 뉴스 앵커 박시연이 그렇다. 애아빠는 출산을 거부하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내에선 갖은 핍박이 쏟아진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공공연히 애까지 낳는 건 테러"라고 윽박지른다. "윤리와 품위에 어긋난다"며 혀를 차는 주변인들을 향해 박시연은 소리친다. "그럼 낙태가 윤리고 품위입니까?"

드라마, 여성을 고민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달 7일 비혼모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비혼모 사회의 규모가 커진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편견을 고치자는 주제다. 조경애 교육부장은 '최고의 결혼'을 예로 들며 "드라마가 비혼모를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아직 편견이 많이 작용하는 분야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고 토론의 영역을 넓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고의 결혼’의 30대 비혼모 박시연은 모성(母性)과 뚝심으로 갖은 멸시와 방해공작을 극복한다.

드라마 작가 고윤희씨는 "30·40대 여성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낯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핫'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쇼윈도 부부'(겉으로만 잉꼬부부 행세 하는 부부), 능력이 안 돼 '취집'(취직하듯 시집가는 것)이 지상목표인 실버미스(Silver miss), 주변 눈치 보느라 시간당 2만원 '시급 남편'을 고용하는 여자들의 얘기가 등장한다.

고씨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도 비혼모(변호사 미란다)가 등장하지만, 마냥 즐거워 여자의 판타지만 건드리는 데 그친다"면서 "이 드라마는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사회성이 강하다. TV조선이란 매체가 그 메시지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0대 이상 여성의 전폭적 지지

이 드라마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달콤한 연애를 그리는 여타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르다. 시청자 게시판엔 "결혼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겪는 남녀 갈등, 사회생활에서 새 역할을 쟁취하려는 여성의 노력을 보게 된다"는 게시글이 많다. 시청률 분석업체 TNms에 따르면, 이 드라마 시청자의 54%가 30대 이상 여성이었다.

드라마 평론가 공희정씨는 "출산과 육아, 업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늘 상처 입는 건 여성 쪽이 대부분"이라며 "드라마를 통해 극중 30대 주인공(박시연)의 처지에 공감하는 여성들의 각성과 분노가 몰입도를 끌어올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불편한 문제를 다루지만, 캐릭터는 시원시원하다. 이른바 '단호박녀'(말과 행동을 단칼에 하는 여성)들의 향연이다. 오종록 PD는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명예교수는 책 '한국의 유교화 과정'에서 '가부장제는 이제 끝났다'는 얘길 한다. 그런데도 공중파 드라마는 이런 식의 접근을 못 한다. 박시연 같은 캐릭터는 늘 조연일 수밖에 없다. 결혼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쿨하고 멋질 수 있다는 사실에 여성들의 호응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드라마는 지난달 베트남에 판매됐고, 대만과 미얀마, 캄보디아와 판매 협의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