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잔반통에 버려진 예산 388억

입력 2014.11.30 16:37

아이들이 무상급식 안 먹는 이유

지난 11월 11일 서울시 강동구 소재의 한 공립중학교 점심시간. 12시30분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복도로 몰려나와 자체적으로 배급을 하기 시작했다. 이날 메뉴는 소시지볶음, 깍두기, 시래기국, 제육볶음, 밥, 상추무침. 배식량은 상당히 넉넉해 보였다. 아이들이 배식을 받아간 후에도 반찬통에는 남은 음식이 제법 있었다. 학교와 계약한 잔반수거업체 아르바이트생이 남은 밥과 반찬을 두손으로 가득 퍼 여러 번 잔반통에 옮겨야 할 정도였다.
   
기자가 식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급식이 맛있는지 묻자 대다수 학생들이 “맛이 없다”고 말했다. 3학년 태권도부원은 “집밥보다 맛이 없어요. 무상급식이라 더 맛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제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너도나도 식판에 남은 음식을 잔반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그 양 또한 상당했다. 각 학급에서 모인 잔반들은 학교 1층 대형 잔반수거통에 모아졌다. 모인 잔반을 촬영하고자 했으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이를 극구 숨기는 탓에 촬영이 불가능했다.
   
초·중·고교 학교급식이 집에서 먹는 밥보다 맛이 없다는 평가는 이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무상급식 실시 이후 급식의 질과 맛이 더 떨어졌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취재 과정에서 연결된 한 중학교 학부모는 ‘제보’라며 아들이 학교급식을 거부하는 실태를 말해줬다. 서울시 강남구 소재 언주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 ‘담치기(담을 넘는 행위)’를 하며 학교급식 대신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11월 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국회에서 무상급식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2014년 무상급식 예산은 2조6239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5%를 차지한다. 2010년 전체 예산의 1.1%(5631억원)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반면 교육환경 개선 예산은 2010년 1조6419억원(전체 예산의 3.6%)에서 2014년은 8830억원(1.7%)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김 대표는 “무상급식에 중점을 둔 예산편성이지만 급식 질은 떨어지고 교육 질도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다른 교육 예산을 ‘잡아먹는’ 무상급식을 아이들이 맛이 없다고 거부함으로써 부족한 교육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려지는 무상급식 때문에 잔반 처리 비용까지 들면서 안 그래도 부족한 교육 예산을 더욱 옥죄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배 의원(새누리당·충주시)은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인용, 전국 초·중교 무상급식 대상 학교급식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이 지난 4년간 전국적으로 388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 4년간 388억원이나 쓴 잔반처리 비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시작한 2011년과 그 전해인 2010년의 서울시 학교들의 잔반처리 비용을 비교해 보면 초등학교는 10억4000만원에서 11억원으로 약 6000만원, 중학교는 6억4800만원에서 7억2800만원으로 약 8000만원 증가했다. 2011년 이후부터는 초등학교의 경우 잔반처리 비용이 매년 평균 2억원씩 증가했고 중학교의 경우 매년 평균 5000만원씩 증가했다. 2013년 초등학교의 잔반처리 비용은 약 14억1200만원, 중학교는 약 8억7600만원이었다.
   
잔반처리 비용이 늘어난 것은 잔반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시 초등학교의 경우 2011년부터 연간 음식물쓰레기 양이 평균 50만t씩 증가했고 중학교의 경우는 평균 10만t씩 증가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음식물쓰레기 양은 2013년 각각 약 890만t, 700만t이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잔반처리 비용 증가 이유를 물었더니 “아직 구체적 원인이나 방안을 찾지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급식 기획팀의 권면진 주무관은 “위탁업체에 주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이 매년 증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매년 배출되는 잔반의 양이 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아이들이 외면하고 버리는 급식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잔반처리 업체에 주는 비용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럼 무상급식 자체가 급식의 질을 떨어뜨려 잔반 양을 늘렸다는 지적은 맞는 것일까. 지난 9월 채널A가 보도한 ‘무상급식이 맛없다. 잔반 넘쳐나’에서의 지적처럼 무상급식 후 급식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전부터 있어 왔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짜 밥이다 보니 맛이 더 없다”는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무상급식 대상이 아닌 고등학교의 경우도 잔반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처리비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2011년부터 잔반이 연평균 100만t 증가했고 처리비용도 매년 평균 3억5000만원씩 증가했다. 2013년 고등학교에서 배출된 잔반은 약 1500만t이고, 처리비용은 약 17억6000만원이었다.
   
무상급식이 유상급식보다 ‘싸구려’도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 예산과 곽현미 주무관에 따르면 초등학교 1인당 1끼의 무상급식에 드는 비용은 3810원, 중학교 1인당 1끼의 무상급식에 드는 비용은 4100원이다. 이는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경기초등학교(3250원), 경희초등학교(3500원), 광운초등학교(3100원)와 같은 사립 초등학교보다도 높은 금액이다. 물론 같은 돈을 쓰고도 무상급식의 질이 떨어질 수 있는 요인은 있다. 친환경 식자재 구입비 등에 너무 돈을 들여 정작 아이들이 좋아할 식단을 꾸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치로만 보면 무상급식이 유상급식보다 맛이 떨어질 이유는 없다.
   
무상급식이 원인이든 아니든 어쨌든 국민의 혈세가, 안 그래도 부족한 교육 예산이 매년 잔반통에 고스란히 버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외면하고 거부하는 근본 원인이 따로 있는 것일까.
   
주간조선은 익명을 전제로 서울시 서초구 소재의 중학교 교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 중학교는 현재 인접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급식소를 이용하고 있다. 이 학교장은 “모든 중학교는 지역 교육청의 권고에 따라 1년에 한 번씩 ‘급식 만족도 조사 표준안’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무상급식 만족도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학교 홈페이지에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학교장은 “나름 해당 공동급식 고등학교 학교장과 회의도 하고 메뉴도 알차게 준비하도록 건의하는데 이번 연도 학생들의 급식 만족도 조사 결과가 상당히 안 좋게 나왔다”면서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인 급식운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급식 문제는 학교장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무상급식 관련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 학교의 교장은 자체적으로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때문에 학교마다 어떤 영양교사를 고용하고 어떤 식품위탁업체와 계약을 하느냐에 따라 급식의 질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이 학교장은 “특히 사립고등학교의 경우는 무상급식을 하는 초·중학교보다 더한 사각지대에 있다”고도 했다. 별도의 감사기관이 없고 학교장의 결정이 절대적이라 마음만 먹으면 부당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연히 학생들의 급식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교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실제 무상급식이 실행되기 한 해 전인 2010년 인천 지역에서 초·중·고 학교장 47명에게 뇌물을 건넨 학교급식 업체 대표가 구속된 일이 있었다. 당시 인천서부경찰서는 급식 업체를 운영하면서 인천 지역 초·중·고등학교 교장에게 자신의 업체가 선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모 식품업체 대표 A씨(51)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9년 12월 28일 B학교 교장실에서 교장 C씨에게 50만원을 건네는 등 2010년 1월 16일까지 총 47명의 학교장들에게 271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인천 지역에서 학교급식을 실시하는 245개 학교 중 94개 학교에 농산물을 납품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사 등으로 이뤄진 학교급식운영위원회가 납품업체 2~3곳을 추천, 학교장이 최종 결정하는 구조를 알고 학교장에게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맛없는 무상급식이 학교급식 운영 감사를 맡고 있는 지역 교육지원청의 허술한 행정구조 때문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서울시 공립 초·중학교의 경우는 조리를 총괄하는 영양교사의 월급과 위탁처리업체에 지불하는 비용과 잔반처리에 드는 비용이 모두 무상급식 예산에 포함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학교에 배정된 영양사의 실력과 자질이 상당부분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무상급식 실시 학교의 영양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교급식이 맛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강동·송파 교육지원청 평생교육건강과 노기린 주무관은 “서울시 25개 구를 담당하는 11개의 지역교육지원청 평생교육건강과에서 매년 상반기·하반기로 나눠 상반기는 위생안전, 하반기는 급식 운영평가를 하지만 영양사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노 주무관에 따르면 2006년부터 각 학교에 배치돼 있는 비정규직 영양사(영양교사, 식품위생직 영양사, 학교회계직 영양사 등의 직군으로 분류) 중 일부 직책이 교육직 정규교사로 변경됐다고 한다. 이때 교육지원청 평생교육건강과에 있던 영양사 인사권이 교육지원청의 초·중등 교육지원과로 이동해 평생교육건강과가 영양사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부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급식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를 방문해 급식운영의 문제사항을 지적해도 사실상 개선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상급식 식자재 유통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 또한 질 낮은 학교급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이장우 의원(새누리당·대전동구)은 서울시 국감에서 무상급식 대상 학교에 친환경 식자재를 공급하는 서울시 산하 ‘서울친환경유통센터’ 직원들이 센터에 친환경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와 결탁해 저지른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서부지방검찰청 형사 2팀에서 지난 5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 급식 비리 수사 결과 직원 3명과 업체 대표 등 모두 10명이 구속 내지는 불구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된 이들은 업체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익명으로 인터뷰를 했던 서초구 소재 모 중학교 학교장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학교의 급식제도는 무상 유상 할 것 없이 ‘총체적 난국’이다. 매년 무상급식에 편성되는 예산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행정시스템은 부실하고 학교급식의 질을 좌우하는 책임자들을 감시할 기관은 존재하지 않아 사각지대가 형성돼 왔다. 학교급식의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교육환경 개선 예산을 줄이고 무상급식 예산을 더욱 늘려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원도와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유치원 및 초·중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연차적으로 고등학교까지 확대키로 합의했다고 지난 11월 7일 밝혔다. 보편적 복지를 앞세워 올해 2조6239억원까지 늘어난 무상급식예산. 바가지에 물을 채우기 전에 새고 있는 구멍부터 살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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