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입력 2014.11.28 05:27

원철 스님의 인생·종교 어우러진 '집으로 가는길은 어디서…' 출간… 한국인 정서 녹여낸 불교 에세이

목차(目次)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내가 감당할 괴로움이 있으니 그런대로 살 만한 세상' '금(金)도 눈에 들어가면 병 된다'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에는 오로지 생각이 있을 뿐이다' '내 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하나하나가 잠언이다.

원철 스님(54·해인사 승가대학장)이 쓴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는 이 시대 불교 에세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풍광과 서정이 있고, 동서고금 명문(名文)이 있으며 인생, 그리고 불교가 있다.

원철 스님은“수도승(首都僧)으로 8년을 살며 은둔을 그리워하다 서울을 탈출했다.
원철 스님은“수도승(首都僧)으로 8년을 살며 은둔을 그리워하다 서울을 탈출했다. 그러나 속리산과 가야산에 살면서 은둔과 노출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됐다. 노출을 권하는 출판사 권유에 따라 책을 낸다”고 말했다. /불광출판사 제공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라는 꼭지는 반야심경 중 '불구부정(不垢不淨)' 네 글자에서 길어올린 향내 나는 글이다. "언젠가 '불구부정' 네 글자 앞에서 호흡이 멈추었다.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더러움은 피해 가고 또 깨끗함만 찾아가려고 애쓴다. 쓰레기통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청결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쓰레기통을 멀리하려고만 든다."

지는 벚꽃 보러 진해 경화역 앞에서 몇 시간, 피는 벚꽃 만나러 역시 진해 여좌천을 지키는 중년의 스님이 던지는 서정은 또 어떤가. 속리산 법주사 마애불은 발가락에 힘 주고 허리가 가늘어지는 모습이 '일어나려는 순간'을 새긴 것이란 미술사학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돌부처의 발가락 모양을 열심히 살피는 게 원철 스님이다. 또 부활절과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그리고 부처님오신날 등 각 종교의 명절이 3·4월 무르익은 봄날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모여 있는 것에서 '또 다른 조화와 화합을 주문하는 이 시대의 메시지'를 판독해 낸다.

원철 스님은 본디 학승(學僧)이다. 해인사로 출가해 불교 경전과 선(禪)어록을 공부하고 강의했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등 산문집도 냈지만 당대의 대강백(大講伯) 지관 스님의 권유로 난해한 불교 경전을 여러 권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팔만대장경을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꿴다. 묻기만 하면 한자 구절이 줄줄 나온다. 자판기가 따로 없다. 그러면서도 총무원에서 돈 만지는 일(재무국장) 맡겨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산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수도승(首都僧)'이라 자조(自嘲)했다. 2012년 법주사로 들어가 학인(學人·사미)을 가르쳤고 현재는 친정인 해인사에 살고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이 이농(離農)과 도시화로 몸살을 앓던 1970년대 정서를 담아 독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진 명작이라면 원철 스님의 이번 '집으로…'는 2014년 '지금 여기' 한국인의 정서를 녹여낸 수작(秀作). 팁 하나. 이 책을 들기 전 주변에서 연필과 형광펜 따위는 치울 일이다. 줄 긋다가 책이 형광색으로 물드는 수가 있다. 라면처럼 후루룩 단숨에 독파(讀破)할 책이 아니다. 깊은 향 차(茶)처럼 두고두고 아껴가며 한 편씩 음미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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