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회 재생된 '책 라디오'… 성공 비밀은?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14.11.26 05:19

    '이동진의 빨간책방' 100회
    취향 공동체 관리, 테마 유지… 작가 김중혁과 '케미'도 무기

    "서리가 내리고 얼기 시작하는 땅에는 비로소 뿌리를 내리는 몸들이 있습니다. 파와 마늘, 보리와 밀, 시금치 같은 것들이죠. 가장 쓸쓸한 시절에 가장 먼저 봄을 준비하는 일. 오늘은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데서 겨울을 난 몸들이 유독 맵고 아리면서도 달고 환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만추의 파종처럼 풍경이 가장 쓸쓸해지는 이맘때가 실은 그 쓸쓸함의 힘으로 뭔가를 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지요."

    '이동진의 빨간책방(빨책)' 녹음은 이런 오프닝으로 시작됐다. 위즈덤하우스가 만든 팟캐스트 빨책이 26일 100회를 돌파한다. 2012년 5월 1회를 업로드한 뒤 2년6개월 만이다. 매회 약 15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출판 팟캐스트 분야 1위를 질주해온 이 '책 라디오'의 흥행 요인은 뭘까.

    100회를 돌파하는‘이동진의 빨간책방’팟캐스트와 진행자 이동진.
    100회를 돌파하는‘이동진의 빨간책방’팟캐스트와 진행자 이동진.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브랜드파워는 옆으로 밀쳐놓자. 빨책은 무엇보다 문학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 골수팬을 실망시키지 않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원미선 21세기북스 인문실장은 "'취향의 공동체'를 관리하면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도서 선정과 테마 유지가 빨책의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속죄' '무의미의 축제' '백석 평전' '칼의 노래'를 비롯해 그동안 다룬 책 70종은 신작이나 베스트셀러에 의존하지 않았다. 김은주 위즈덤하우스 분사장은 "좋은 책을 읽으면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남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는데 빨책이 그런 욕구를 채워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동진과 작가 김중혁의 '케미(화학적 궁합)'는 다른 팟캐스트가 흠모하는 빨책만의 무기다. 그들은 대화의 방법과 묘미를 알고 있다. 이동진이 분석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김중혁이 호응하면서 정리를 해준다. 또 김중혁이 전업 작가로서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면 이동진이 문학·영화·역사적 맥락으로 그것을 확장시키는 흐름이 돋보인다. 농담의 의외성과 수위도 적절해서 청취자와의 '밀당'을 돕는다.

    빨책이 이안 매큐언의 '속죄'를 소개하자 이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치솟았다. 많게는 1000부 안팎 판매량을 움직인다. 출판사들은 "빨책에 나오면 초판은 소진되고 재판을 찍는다"고 말한다.

    빨책 100회는 오카자키 다케시가 쓴 '장서의 괴로움'과 톰 라비의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을 두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동진은 "나도 병자(책 중독자)는 아니지만 같은 지병을 앓고 있다는 걸 고백한다"며 다른 두 '환자' 김중혁 과 이다혜 씨네21 기자를 맞이했다. 공개 녹음하는 날은 "국수라도 돌려야 할 것 같은" 잔치 분위기였다.

    빨책의 인기로 지난 6월 서울 합정역 근처에 '빨간책방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동진은 카페에 흐르는 음악도 선택하고 책에 한 줄 평을 달아 진열한다. '속죄'에는 "최상급의 테크닉과 깊이 있는 인간 탐구가 함께 담긴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이라고 적었고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에 아픔을 일깨워 주기 위한 이성복의 시적 방법론"이라고 썼다. 청취자 반응이 뜨거웠던 외국소설 7편의 이야기는 다음 달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이라는 책으로 묶여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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