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武臣시대는 암흑기 아니었다"

조선일보
입력 2014.11.21 23:05

성숙하고 찬란한 문화 가진 무신 집권기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경제·문화 성장한 박정희 시대와도 닮아… 연구 가치 있다

'무신과 문신'
무신과 문신|에드워드 슐츠 지음|김범 옮김|글항아리|372쪽|1만8000원

1966년 미국 뉴욕 유니언 대학을 갓 졸업한 22세 청년 에드워드 슐츠(70·하와이대 명예교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개발도상국 원조를 위해 창설한 평화봉사단의 한국 파견 1기였다. 그는 부산 경남고에서 1년간 영어회화를 가르쳤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먼지 풀풀 나는 흙길 천지의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력과 뜨거운 교육열만큼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뒤에도 동서문화센터 장학생(1970년)과 풀브라이트 장학생(1973년)으로 그의 한국행은 두 차례 더 이어졌다. 전공을 정치학에서 한국사(韓國史)로 바꿨다. 미 하와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같은 학교 한국학연구소장과 아시아·태평양 학부 학장을 역임한 '한국학 전문가'가 됐다.

반세기 가까운 한국과의 인연은 고려 무신 정권을 주제로 최근 번역·출간된 연구서 '무신과 문신'으로 지속되고 있다. 서강대 교환교수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슐츠 교수는 "1000년에 걸친 고려와 조선의 문신 지배 전통에 견줄 때 무신 집권기는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일종의 변칙이나 예외로 간주됐지만, 당시에도 고려는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찬란했다"고 말했다.

대개 1170년 정중부가 주도한 '무신의 난'부터 1258년 최의(崔竩)의 피살로 4대에 걸친 '최씨 정권'이 몰락할 때까지 88년간을 '무신 정권'이나 '무신 시대'로 부른다. 이 시기를 고려사의 '암흑기'나 '실패의 시기'로 단정하는 것은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해석이라는 것이 슐츠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최충헌의 집권으로 '최씨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전체 관직에서 문반(文班)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대 74%까지 높아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무신이 문신들을 숙청하고 집권에 성공했지만, 고도로 발달한 고려의 조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행정 능력을 갖춘 문신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슐츠는 "최충헌은 최씨 정권에 협력한 학자는 물론이고 비타협적인 인물까지 모두 초청해 작문 경연을 열었을 만큼 예술과 문학 후원자를 자처했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슐츠 미 하와이대 명예교수는“최충헌 집권 이후‘무신 정권’이 문신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고려가 세련된 행정적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슐츠 미 하와이대 명예교수는“최충헌 집권 이후‘무신 정권’이 문신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고려가 세련된 행정적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슐츠 교수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고려 무신정권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최충헌은 모두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경제·문화 분야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뤘죠.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도 문치(文治)를 중시했던 점 역시 닮았습니다." 그는 "박정희 시대는 민주주의보다 독재에 가까웠지만, 경제 발전의 기반을 닦은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오늘날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국가로 성장했다"고 평했다.

슐츠 교수는 2011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本紀)', 2012년 '신라본기'를 영역(英譯)한 데 이어 지금은 동료 학자들과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공역하고 있다. 번역 작업을 마치면 다시 무신 집권기 이전의 12세기 고려사 연구로 돌아갈 계획이다. 슐츠 교수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고려 시대 인물은 김부식. "현실주의 외교 정책을 펼친 관료이자 '삼국사기' 같은 대작을 남긴 다재다능한 지식인"이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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