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조선] “힙합 아들, 트로트 엄마 주현미 함께 노래하는 날 꿈꿔요”

  • 취재 김가영 기자
  • 사진 방문수
    입력 2014.11.12 13:33 | 수정 2014.11.16 13:27

    데뷔 30주년 주현미

    “어떤 사람들은 ‘그럼 트로트 팬들은 버린 거냐’고 해요. 트로트는 제가 하는 음악이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하지만 요즘 음악은 이렇다, 라는 것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주현미의 새 앨범은 기존의 ‘트로트기’를 쫙 뺐다.
    전체적으로 발라드 느낌이 강한데 트로트 창법도 남아 있다. 굉장히 신선하고 고무적인 도전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면 그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비 내리는 영동교’가 발표된 지 꼭 30년 만. 해당 곡의 주인공 주현미를 만났다. 데뷔 30년 차의 이 베테랑 가수는 무려 30분이나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만 주고받을 때는 몰랐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소녀 감성’이 여전하다. TV에서 보던 대로 입가의 보조개가 매력적이었고, 말주변은 없었지만 솔직하고 애교가 있었다. 미국에 유학 중인 두 자녀를 언급할 때는 우리네 엄마의 모습과 다름 없었고, 남편의 간접적인 만류에도 음악의 길을 고집했다는 대목에서는 천생 가수라는 생각이 문득, 그리고 새삼 들기도 했다.

    얼마 전 공개된 주현미의 데뷔 30주년 정규 앨범은 기존의 트로트 앨범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DJ DOC와 김건모, 김범수와 이은미 등 무수한 가수들의 히트곡을 양산해온 작곡가 윤일상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정엽과 에코브릿지 등 젊은 작곡가들도 가세했다. 말하자면 주현미의 첫 번째 큰 도전인 셈이다.

    세월이 흘렀고 음악도 변했다
    후배 주현미가 동시대 음악과 타협한 앨범을 발표하자 선배인 하춘화가 그랬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약간의 시도를 했었지. 근데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바로 접었단다. 이번에 네 결과물로 반응이 좋으면, 결국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니?” 주현미는 여전히 트로트 가수다. 하지만 흐름을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음악 안에서 신구(新舊) 장르가 지지고 볶고 섞이고 하는 것, 그건 기존의 트로트 팬들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예전 앨범들과 느낌이 다르던데요? 요즘 발라드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어요. 그래요? 어떤 노래가 좋았나요?
    첫 곡(‘빗속에서’)이랑 ‘최고의 사랑’도 좋았고 ‘아버지’도 슬픈데 좋더라고요. 이번 앨범을 어떻게 자평하세요? 저는 좋죠. 여태 해오던 분위기로 만든 게 아니라 다 후배들, 젊은 작곡가들하고 한 거거든요. ‘소녀 일기’라는 노래만 ‘짝사랑’, ‘또 만났네요’를 작곡해준 김영광 선생님과 작업했고 나머지 곡들은 다 젊은 후배 작곡가들과 작업했어요.
    작곡가 윤일상 씨가 프로듀싱했죠. 그렇죠. 정엽하고 에코브릿지 같은 친구들하고도 함께 하고요.
    윤일상 씨와는 몇 년 전 조PD와 함께 ‘사랑한다’라는 곡도 작업했었어요? 힙합 장르가 믹스된 곡이었는데 그 곡도 참 좋아해요. 처음 작업할 때 어색하진 않았나요? 처음에 그 멜로디를 줬을 때 ‘내가 어떻게 이런 빠른 노래를 하지?’ 그랬어요. 근데 역시 윤일상이라는 작곡가가 내가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능력 안에서 최대치를 끌어내주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에도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곡을 줬는데, 참 (좋았죠).
    지금이 딱 가을과 겨울 사이네요. 내 나이도 딱 그때고요.
    아 그러네요, 정말? (윤일상 씨가) 이 노래를 주면서도 그랬어요. 선배님 나이를 의미한다고요. 이미 정열의, 뜨거운 태양이 빛나는 여름은 갔어요. 가을은 가을인데 겨울은 맞기가 싫고요. (제 나이가) 그런 시절이죠.
    지난 9월 13일에 가진 30주년 공연은 어땠나요? 늘 사랑받은 노래, 애창곡만 부르다가 오랜만에 발표한 신곡들도 들려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도 처음 (데뷔할 때)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요. 기존의 내 팬들에게도 이런 변화한 음악 패턴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물론 우리 전통가요(트로트)가 좋지만,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대중가요도 많이 변했어요. 음악이 변한 만큼 이런 음악도 알리고 싶었어요.
    국카스텐이 피처링한 곡도 있어요.(국카스텐은 홍대 인디 신에서 활동하다 2012년 <나는 가수다2>를 통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록 밴드다.) 보컬 하현우 씨는 예전부터 아끼는 후배였다면서요. 언제부터 알게 된 인연인가요? 꽤 오래 됐어요. 2008년? 아니 2010년 즈음이었나…. <나는 가수다2> 나오기 전에 인디밴드로 활동할 때부터 알았죠. 국카스텐의 음악이 정말 독특하잖아요. 보컬 하현우 씨의 음색도 좋고요. 한국의 어떤 밴드에서도 볼 수 없는 색깔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같이 공연도 했어요.
    이번 30주년 공연 때요? 아뇨. 몇 년 전에 ‘트로트와 인디의 만남’이라 해서 같이 콘서트를 했는데 당시 국카스텐이 제 노래 8곡 정도를 밴드 사운드로 편곡했어요. 그때 정말 반했죠. ‘이 친구들 참 실력 있구나.’ (이번 앨범에 삽입된) ‘쓸쓸한 계절’도 그 당시에 하현우 씨가 편곡한 노래예요. 처음 그 곡을 함께 하자 그랬을 때 너무 놀라서 “나한테 그런 노래도 있었니?” 이랬다니까요.(웃음) 그래서 그 노래를 기타 하나에 둘이 서로 주고받으며 불렀는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도 넣었어요.
    주현미 씨도 몰랐던 노래를 한참 어린 후배가 더 잘 알고 있네요. 그러니까 요즘 음악 하는 후배들이 무서워요. 뭘 해도 설렁설렁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철두철미한 것 같아요. 프로페셔널해요. 우리 시대 때는 음악을 한다는 게 돈벌이하고 연관되고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 온몸으로 음악을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예뻐요.
    이번 30주년 앨범에 대한 주변 반응들은 어때요? 추가열 씨 같은 경우는 엄청 지지를 해줬어요. 나중에 자기와도 한번 해보자고요. 기존에 트로트를 좋아하는 팬들 중에는 자기들을 외면하는 거냐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장르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니까요. 음악 안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것뿐이에요. 하춘화 선배는 ‘네가 이런 시도를 하는 걸 나도 좀 지켜보련다. 이게 성과가 좋으면 우리도 이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사실 엄청 어깨가 무거워요.(웃음) 잘됐으면 좋겠어요. 어쨌거나 음악은 변했으니까 고전에만 너무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트로트를 좋아하는 우리 팬들에게 음악이 이렇게 변했으니 변한 것도 들어보시라, 하고 들려드리고 싶고 같이 즐기셨으면 해요.
    올해 조용필, 이선희 등 많은 과거의 가수들이 컴백했어요. 과거의 노래를 편곡해 부르거나 신구 세대가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갖는 프로그램도 많이 생겼고요. 선배 세대의 가수들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많이 생겼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함께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솔직히 고맙죠. 자기 갈 길 가기만도 바쁠 텐데 뒤돌아서서 선배들과 뭔가를 함께하겠다는 거잖아요. 고맙고 사랑스럽죠.
    라디오 진행하면 요즘 신곡도 많이 들을 텐데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은 후배가 있나요? 올해 초였나? <불후의 명곡>에서 아이돌 그룹 틴탑의 니엘이 제 노래 ‘짝사랑’을 불렀어요. 그 니엘이란 친구의 목소리 색깔이 정말 특이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니엘과 엄마와 아들 콘셉트로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조PD, 국카스텐, 소녀시대 서현 등 후배 가수들과 많이 작업을 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같이 작업을 하지만 첫발을 떼는 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아이돌의 인기에 편승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을 것 같았고요. 근데 ‘사랑한다’(2010년 윤일상이 작곡하고 주현미가 노래, 조PD가 랩을 피처링했다) 같은 경우는 한국 힙합계의 스타트 멤버인 조PD 같은 친구와 이런 프로젝트가 아니면 어떻게 같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음악 안에서 함께할 수 있으니까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근데 윤일상 씨한테 조건을 달았어요. 이거 해보긴 하는데 녹음 결과가 너무 이상하면 그냥 하지 말자, 나 너무 창피하다.(웃음)
    <꽃보다 할배> 주제가 ‘2013 대지의 항구’를 불렀죠. 그 프로그램이 워낙 전에 없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굉장히 히트를 했어요.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가수 이선희 씨가 아마 그 프로그램 음악감독을 했을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언니, 이건 꼭 해야 돼”라고요. 그날이 제가 미국에서 온 날인데, 당장 작업실로 오라기에 차도 없다 그랬더니 보내준다고 빨리 오래요. 그렇게 녹음했어요. 이선희 씨한테 고맙죠.
    참, 그러고 보니 트로트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죠? 트로트라고 얘기하면 차라리 나아요. ‘성인가요’라는 말은 더 싫어. (좌중 웃음) 도대체 왜 성인가요야, 왜. 무슨 19금도 아니고.(웃음) 차라리 옛날에 말하는 그 ‘뽕짝’이 낫겠어요. 트로트는 음악의 어떤 리듬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냥 ‘전통가요’라고 해주면 가장 좋겠어요.


    힙합 좋아하는 아들, 트로트 부르는 엄마

    주현미의 두 자녀 준혁 군과 수현 양은 지금 미국에 있다. 버클리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첫째 준혁 군은 곧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란다. 음악을 하고 싶은 아들, 그런 아들이 못내 걱정스럽지만 응원을 시작하려는 엄마. 머지않아 두 모자(母子)의 멋진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들이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어요. 졸업을 앞두고 있죠? 맞아요. 근데 TV에 사진이 나왔는데 그게 우리 아들이 아니에요. 잘못 나갔어요. 어떤 아이돌 멤버 사진인데 제 아들과 이름이 똑같더라고요. 왜 작가가 나한테 한 번이라도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몰라요. 어쩜 공중파에서 그런 실수를 하는지 정말 화가 났는데, 얘기를 해도 이미 다 나갔다고 하니까…. 그 얼굴이 아니에요.(웃음) 준혁인 정말 자기 얼굴 나오는 거 싫어해요. 원하지 않아요.
    부모가 걸었던 길을 자식이 똑같이 걷겠다고 했을 때는 성공한 삶을 산 거라던데,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그거 아닌 거 같아.(웃음) 걔는 내 삶을 보고 선택한 게 아닐 거예요. 음악도 완전 장르가 달라요. 걔는 힙합을 좋아해요. 그리고 우리 아들도 그렇고 요즘 음악 하는 후배들은 우리 세대와 생각이 아주 다른 것 같아요. 정말 좋아서 하더라고요. 이걸로 내가 출세를 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음악 하는 그 순간만은 정말 좋은가 봐요.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는 편인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얘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한국에서 그것도 힙합이라니 참 난감하다, 그랬어요.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살아남기가 힘들거든요. 게다가 나는 이 바닥의 몇몇 선택된 사람 이외에 배경이 되어 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고 잘 아니까요. 솔직히 정말 고돼요. 뭔가 암묵적인 서열이 매겨지기도 하고요. 내 아들이 그런 것들을 겪는다는 건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근데 다행인 건 요즘 후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맘껏 하면서 행복해해요. (인기나 출세에 목매달기보다) 하고 싶은 음악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충실하려고 해요. 그렇다면 ‘그래, 응원해주자’ 했어요.
    아들이 한국에 돌아오면 같이 음악을 할 생각도 있나요? 우리 옛 가요들을 다시 기록하는 측면에서 그런 작업(편곡)을 준혁이한테 좀 맡겨봤으면, 싶어요. 준혁이가 작곡을 하고 제가 부를 수도 있고요. 물론 이제 막 배우는 단계니까 시간이 걸리겠죠. 또 서양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 정서가 담겨 있는 트로트를 얼마나 어떻게 알겠어요. 트로트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미국에서 음악 공부 하면서도 ‘비 내리는 영동교’가 자기한테는 숙제래요. 어쨌든 “엄마가 널 위해서 투자했으니까 너도 엄마를 위해서 그건 해줘야 된다” 그랬어요.(웃음)
    아들이 이번 앨범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좋다고 해요. 사실 제 음악에 대해 깊이 분석은 안 해요. 그냥 ‘엄마, 좋아’ 하는 정도예요.
    딸은 음악을 한다고 안 해서 다행이었겠네요.(웃음) 우리 수현이요? 수현이는 나름 밴드 활동을 하더라고요. 유학생들로 구성된 밴드인데 거기서 보컬을 맡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자선 음악 공연을 한대요. 수익금을 북한 어린이 오케스트라에 기부하고 그러는데, 어쨌든 자기 하고 싶은 걸 해요.
    아이들 교육철학이 있나요?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이것만은 지키려고 했다든가요. 뭐, 사소한 것들이죠. 지금도 웬만하면 밤에 늦지 않게 집에 들어오게 하는 것, 먹는 거 잘 챙겨먹는 것.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거예요. 기본적인 것들은 혼자 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여행 데리고 다니면 여행 가서 입을 옷들은 자기들이 직접 싸도록 했어요. 내가 못 해주기도 하고, 재미있으니까 아이들이 직접 하더라고요. 그렇게 스스로 많이 하게끔 했어요.
    사교육은 어떻게 시켰나요? 학원 알아보는 것도 엄청난 정보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엄마들이 장난이 아니에요.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는 엄마도 있고 친해야지만 알려줘요.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뭐 이런 것들. 하여튼 나는 근데 그건 엄두도 못 내겠더라고요. 그래서 학원 보내는 건 포기했어요. 근데 자기네들이 급하니까 ‘엄마, 어떤 선생님이 하는 그거 괜찮대. 거기 등록해줘’ 하고 먼저 말하더라고요. 공부는 해야 되겠다고 느꼈나 봐요.(웃음)
    한때 남편분이 앨범 기획과 제작을 맡았었죠? 음악적으로 가장 ‘돌직구’를 날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남편 임동신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멤버로 기타를 쳤다.) (웃음) 언제부턴가 음악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안 해줘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도 자기가 옛날 사람이라는 걸 언제부턴가 알았던 걸까요? 결혼하면서 남편이 음악을 그만뒀으니까요. 음악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했던 것 같아요. 제 노래 ‘또 만났네요’까지는 (남편이) 프로듀싱을 했는데, 그 이후로는 손을 놨어요. 돌이켜 보면, 아마 은연중에 제가 그만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나 봐요. 최전선에서 활동하지 않고 그저 히트곡 몇 개 남긴 가수로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지 말라고 직언한 건 아니고 돌려서 표현하신 건가요? 네. 사실 이번 앨범 준비할 때도 제가 연습하고 있으면 (코웃음 치면서) “자기, 발라드 가수야? 이제 장르 바꿨어?” 하고 얘기할 정도였어요. 근데 나중에 어떤 곡을 하나 듣더니 “어? 이거 분위기 참 좋네” 하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게 엄청 좋다는 표현이에요.(웃음)
    그 곡이 어떤 곡이었어요? ‘첫사랑 그 기억’이요. 약간 룸바풍의 재즈 느낌 나는 곡이에요.
    인기 많은 가수로 사는 아내보다 평범한 주부로 남기를 원했나 봐요. 사실 지금도 전성기 때만큼 스케줄이 없어요. 라디오를 하니까 거의 매일 나가긴 하지만 전 같지는 않죠. 참, 얼마 전에 남편이 제 30주년 콘서트를 보러 왔어요. 한동안 공연장에도 안 와주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번 30주년 콘서트를 보고는 집에 와서 “자기, 노래하긴 계속 해야겠더라”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남편은 그동안 절 보면서 ‘적당히 하다 말지 왜 저렇게까지 하나?’ 그랬대요. 근데 공연장의 팬들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나 봐요. 그 말에 엄청 감동했어요. 사실 제가 그만하고 싶었거든요.(웃음)
    무대에서 기뻐하고 응원하는 팬들 보면 정말 포기하려다가도 일어서게 되죠? 계속 이 길을 걷게 만드는 원동력이랄까요. 가수에게 팬의 존재란 가족과는 또 다른 천륜이라 그래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어요. 만약에 내가 정말 다 무너졌어도 이 사람들만은 내 편이 되어줄 것 같다는 희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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