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잔은 대개 몸통이 불룩하고 입구가 좁다. 불룩한 모양은 와인 향이 피어오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고, 좁은 입구는 그 향을 가둬두기 위함이다.
50년 전만 해도 와인잔은 일반 물잔과 별 차이가 없었다. 현재와 같은 와인잔을 처음 디자인한 건 오스트리아 와인잔 제조업체 리델(Riedel)사. 이 회사 오너인 게오르그 리델(Riedel·65·사진)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와인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와인 친화적 와인글라스'라는 개념은 아버지인 클라우스 리델이 처음 말했다"며 "전 세계의 모든 와인잔은 우리 리델 와인잔의 카피(모방)"라고 했다.
리델은 아버지와 함께 카베르네소비뇽, 산지오베제 등 포도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최적화된 모양의 와인잔을 개발하기도 했다. "과거 와인잔들은 두껍고 장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양과 크기, 경사각, 입구 지름에 따라 혀에 처음 닿는 부위는 물론 와인 맛도 달라진다는 걸 발견했죠. 두께가 얇을수록 입술에 닿을 때의 감각적 쾌감이 증가한다는 것도요."
리델에게 "딱 하나만 구매한다면 어떤 와인잔을 골라야 하느냐"고 묻자 "그런 잔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와인을 그냥 마시기만 하려면 잔도 필요 없지요. 병째 마셔도 되지 않나요? 하지만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건 단순히 갈증 해소가 아니라 와인 맛을 즐기기 위해서죠. 그래서 잔에 투자하는 겁니다. 고기를 가위로 잘라 먹을 수도 있지만,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나이프를 갖추는 것처럼."
리델은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이 어떤 잔에 마셨을 때 가장 맛있는지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모양이 서로 다른 여러 잔을 가지고 실험해보는 거죠. 와인의 맛과 향을 특별히 더 잘 살려주는 잔이 있습니다. 그걸 구입하세요." 일반적으로는 튤립처럼 생긴 '보르도 타입' 와인잔이 무난하며, 두께가 얇을수록 고급이지만 쉽게 깨질 수 있다.
올해 리델은 와인을 넘어 다른 음료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 1월 코카콜라 전용 잔을 출시했고, 오는 12월에는 네스프레소(네슬레 에스프레소 커피머신 브랜드) 전용 잔을 내놓는다. 코카콜라 전용 잔이 특히 화제다〈본지 1월 14일자 기사 참조〉. 이 잔은 국내 판매 가격이 2만8000원으로 코카콜라 1병(500㎖·이마트 기준 1280원)의 20배가 훨씬 넘는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것 아니냐"고 묻자 리델은 "맛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무척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