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먹만 남기고 수묵화를 뒤집다

    입력 : 2014.11.11 05:58 | 수정 : 2014.11.11 10:07

    한국화가 김호득 '그냥, 문득'展

    광목에 먹으로 그린 '폭포' 앞에 선 김호득.
    광목에 먹으로 그린 '폭포' 앞에 선 김호득. /이덕훈 기자

    처음 맡은 세상의 향이 폭약 냄새였다. 6·25 피란길 경북 영천의 빈 초가에서 태어났다. 산후 조리도 못 한 어미 품에 안겨 핏덩이는 남(南)으로, 남으로 향했다. "그때 고마 죽지. 뭐하러 살았노. 너거 엄마 힘들게." 농반진반 많이도 듣고 자란 말이다.

    "어데 이유 있어 삽니꺼. 눈떠보니 그냥 태어나 있는 기라. 그래서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 박아둔 '그냥'이란 말이 툭툭 나왔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한국화가 김호득(64·영남대 미술학부 교수)은 전쟁둥이의 본능 때문일까 운명론자라고 했다. 그림에서도 그렇다. 치밀한 계획으로 그림 그리지 않고 찰나의 감정에 기대 번개처럼 기운생동 토해낸다. 이번 전시의 제목 '그냥, 문득'은 바로 이 정신을 눌러담은 단어다.

    김호득은 흑과 백, 비움과 채움, 진함과 묽음이라는 전통 수묵화의 전통을 뼈대만 남겨두고 뒤흔들어 온 중견 작가다. 서울대 회화과 시절 '표구할 돈이 없어' 동대문시장에서 싸구려 광목을 떼와 아교칠을 한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서양화를 전공했던 같은 과 여학생들이 버린 캔버스를 주워 천을 뜯어내고 광목을 씌웠다. 김호득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광목에 그린 수묵'이 이때 탄생했다. 작가는 "한때 동양화 자체는 좋은데 그 주위를 둘러싼 권위가 싫어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정면승부하자 마음먹었더니 새 길이 보였다"고 했다. 서울예고 시절 서양화를 전공한 경험이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실험적 소재·행위를 결합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여러 각도에서 본 풍경을 한 화면에 담는 전통 산수화의 다시점(多視點)도 풀어헤쳤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카메라가 폭포를 멀리서부터 비추더니 클로즈업하더군요. 이거야말로 기술이 발견해낸 '현대 구도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폭포 전체를 섬세하게 그리는 대신 최대한 단순화해서 서너 획으로 그려봤다. 그러고 나서 렌즈를 줌인하듯 조금 시선을 당겨 폭포수의 작은 물방울만 그렸다.

    장난처럼 한글의 좌우를 뒤집어 휘갈겨 쓴 작품도 있다. 왼손잡이인 그는 고등학교 때 서양화를 그릴 때까지만 해도 왼손으로 작업했지만,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동양화의 기본인 사군자, 서예를 왼손으로 할 수는 없었어요. 팔목에 족쇄가 씌워진 기분이었지요." 2008년 개인전 때 보란 듯이 왼손을 '커밍아웃'시켰다. 당시 식도암 투병 중이었던 그는 "왼손잡이가 억지로 오른손잡이인 척 사는 것도 가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 있게 있는 그대로 살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광목에 그린 폭포와 좌우가 바뀐 한글 단어, 먹물이 담긴 수조 위에 세운 한지 조형물 등 이번 전시엔 한국화의 실험적 파괴자로 산 작가의 40여년이 오롯이 밴 작품이 나왔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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