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지역 상권 살리고, 예술로 동네 분위기 바꾸고… 숙소가 진화한다

입력 2014.11.11 09:49 | 수정 2014.11.11 16:15

숙박공간의 색다른 실험
주차장에서 식품마켓 여는 '로컬 스티치'
칙칙한 골목길 벽화 그린 '미나리하우스'
작업실 입주비 대신 지역 위해 프로젝트

로컬 스티치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달달마켓 현장.
로컬 스티치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달달마켓 현장. /로컬스티치 제공
홍대 근처인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호텔 '로컬 스티치(Local Stitch)'는 동네 호텔로 불린다. 유휴 여관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0월 오픈한 곳인데, 일반 호텔과는 좀 다르다. 지역을 뜻하는 '로컬'과 박음질을 뜻하는 '스티치'를 합쳐 만든 이름처럼, 지역 상권과 고객을 이어준다. 자활 기업 '꽃피우다'와 (예비) 사회적기업 '에덴 그리닝(EDEN GREENING)'이 호텔의 텃밭 등을 꾸미고, 호텔 투숙객에겐 지역의 세탁소, 미용실, 식당 등을 연계해주는 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달달마켓'이다. 박지빈 로컬 스티치 경영관리팀장은 "호텔 주차장이 비어 있을 때가 많은데, 지역사회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여기에 식품 마켓을 꾸며 점심시간 직장인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병아리콩' 요리를 판매했던 곽성민(31·아날로그 가든)씨는 "아일랜드 여행을 하면서 '병아리콩' 요리를 처음 접하고 한국에서 판매할 계획을 세웠는데 수요 파악을 할 방도가 없었다"면서 "달달마켓에서 고객들을 만나며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곽씨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 7일 자신의 가게를 오픈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노디씨 노마진' '베러댄 초콜렛' '희용이네' 등 지역의 (예비) 청년 창업팀들이 달달마켓에서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김수민 로컬 스티치 대표는 "호텔 안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지역의 작은 가게들을 활용함으로써 잃었던 공동체를 되살리고 싶었다"며 "실제로 주변 식당들로부터 '호텔에서 손님을 많이 보내줘 매상이 늘었다'는 말도 제법 듣는다"고 했다.

미나리하우스는 천장이 무너지고, 마당엔 폐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폐가를 개조해 만들어낸 공간이다.
미나리하우스는 천장이 무너지고, 마당엔 폐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폐가를 개조해 만들어낸 공간이다. /미나리하우스 제공
◇색다른 공간실험… 로컬 스티치·미나리하우스

공간이 달라지고 있다. 셰어하우스(sharehouse·공유주택)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었다면, 이제 공간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달라지는 현장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낡은 여관이 리모델링을 통해 동네 호텔로 재탄생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예술과 지역 주민이 소통하기도 한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편, 동숭동의 좁은 골목길이 부산스러워졌다. 어른 키 두 배만 한 높이 벽 앞에 선 세 사람. 이들의 손놀림에 지저분하던 잿빛 벽면이 금세 화사한 민트색으로 탈바꿈했다. 지나가던 여중생 들은 벽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한참을 구경하는 일본인 관광객도 있었다. "추운데 고생이 많아요"라며 덕담을 건네는 주민도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은 콜롬비아에서 여행 온 일러스트레이터 안드레아(여·28)씨다. 안드레아씨는 "미술은 음악에 비해 대중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오늘 벽화를 그리며 마을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안드레아씨와 마을 벽화 사이 가교 역할을 한 건 '미나리하우스'다. 지난해 4월, 공정미술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가 세운 게스트하우스인데, 안드레아씨는 이곳에 머물다 우연히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미나리하우스 설립은 신진 작가들의 작업실 고민에서 시작됐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는 "예비 작가들은 미대를 졸업하면 현실적으로 작업실을 구할 길이 없는데 이런 문제를 풀고 싶었다"고 했다. 3개월 정도 장소를 물색했고 지금의 위치를 찾았다. 3개의 게스트룸(1인실 5만원, 2인실 8만원), 각종 전시 공간, 작업실 등을 갖춰 여행자에겐 특별한 숙소를, 신진 예술가들에겐 꿈꿀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미나리하우스의 핵심 가치는 예술과 지역 주민의 소통이다. 정지연 대표는 "작업실에 입주하는 작가들은 입주비 대신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끔 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이는 자연스레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브이멘션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 예술가, 학자, 시민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교류한다.
브이멘션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 예술가, 학자, 시민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교류한다. /브이맨션 제공
◇공간 통해 전 세계 네트워킹 '브이멘션'

지난 2012년 6월,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모습을 드러낸 '브이멘션(Vmansion)'. 3개의 개인룸과 2개의 기숙사(dormitory, 4명1실·5명1실)등 숙박 기능이 공간의 뼈대지만, 핵심 가치는 자유로운 네트워킹 공간이다. 숙박비는 유료(개인 8만원, 기숙사 3만원)지만, 디자인토크, 문화 교류 프로젝트, 워크숍 등 연중 내내 진행되는 이벤트 참여는 모두 공짜다. 숙박객의 70%가 외국인인데, 재방문율은 60%에 이른다. 해외에서 영감을 줄 만한 사람이 방문하면 '브이멘션 닷컴(vmansion.com)'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알리고, 이를 통해 국내 젊은이들이 모이기도 한다. 올 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에 참여한 국제적인 건축가가 3개월 정도 브이멘션에서 머물렀을 땐, 건축, 미학 등에 관심 있는 젊은이 20여명이 모여 네트워킹을 했다. 지난 5월 아이작 베르트란 구글 크리에이티브랩 디자이너가 '문화기술(CT)포럼 2014' 참석차 방문했을 땐, 구글 디자인 철학에 관심이 많은 국내 엔지니어 15~20명이 모여 소규모 포럼을 열기도 했다.

디자이너들의 모임 '디자이너토크', 국제개발 청년들의 모임 '아이리스(IRIS)' 등 이미 브이멘션에서 자리 잡은 모임들도 있다. 홍대에 인접한 특성으로 인디 뮤지션들도 브이멘션을 많이 찾는다. 현재는 '썬드럼'이라는 일본 전통 타악기 연주그룹이 묵고 있는데, 지난 주말엔 브이멘션과 연결된 국내 가야금 연주팀과 강화풍물시장에서 합동 공연을 가졌다. 장지혜 브이멘션 대표(문화기획자)는 "전 세계 창작자들이 교류하는 힘으로 콘텐츠가 계속 생기고, 재밌는 기획거리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신천 지역 대학생들과 사회적기업가들, 디자이너 등과 중국 '브이멘션'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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