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를 피해 숨어 살던 마지막 2년을 '안네의 일기'로 남기고 열여섯에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난 안네 프랑크(1929~1945). 그의 사촌오빠 버디 엘리아스(89)와 사촌 언니 모니카 스미스(91)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독일·네덜란드 등 나치 탄압이 극심했던 곳에서의 초대에 부쩍 바빠진다. 안네 프랑크의 소꿉친구 에바 슐로스(85)도 마찬가지다. 나치의 과오를 돌아보려는 독일인들이 안네 프랑크의 친척·친구로부터 그의 삶에 대해 직접 듣고 추모하기 위해서다.

안네 프랑크를 기리는 행사가 이맘때 많은 것은 그의 가족과 같은 유대인(이스라엘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이 본격화된 때가 1938년 11월 9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독일과 오스트리아 나치 대원들은 도끼와 망치로 유대인 회당과 상점, 주택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불태웠다. 파괴된 건물의 깨진 유리 파편이 수정(水晶)처럼 반짝이며 거리를 가득 메워, 독일에서는 이날을 '크리스탈 나흐트(Kristallnacht·수정의 밤)'라 부르며 잊지 않고 있다. 이날 무차별적 구타를 당한 유대인 91명이 사망했고, 3만여명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12세 때 안네 프랑크(왼쪽 사진)에 대해 동갑내기 친구 에바 슐로스(오른쪽)는 “안네는 수다쟁이에다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모니카 스미스(가운데)는 “사촌 동생 안네는 활달한 소녀였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독일인들에게 11월 9일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과오(過誤)를 반성하는 날인 동시에 베를린 장벽(1989년)이 무너진 환희의 날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일이 통일 기념일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1월 9일로 하지 않고, 그 이듬해 동·서독 통일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10월 3일로 정한 것도 '크리스탈 나흐트'를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일인들은 76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크리스탈 나흐트를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9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크리스탈 나흐트는 독일 역사상 최악의 날이었다"며 국민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에 역사의 현장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깨진 유리 무늬로 크리스탈 나흐트 현장을 재현하는 다채로운 행사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