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로 안 하고 하나씩 따로 구하시려면, 신부님이 의상·소품·화장을 일일이 알아서 준비하셔야 해요. 결단력 있게 결정하세요. 인생에 한 번인데."
서울 강남에서 열린 한 웨딩박람회에서 웨딩플래너들이 예비신부인 줄 알고 취재팀한테 한 말이다. 취재팀이 만난 신부들은 "이렇게 이상한 상술이 판치는 시장이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실제로 어딜 가나 모든 상품이 패키지로 묶여 있고, '허영심 마케팅'이 극심했다.
◇모든 게 '패키지'
취재팀은 웨딩박람회 4곳, 청담동 웨딩드레스가게 6곳, 스튜디오 6곳, 미용실 1곳을 돌았다. 취재팀이 "간소하게 하고 싶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스튜디오 촬영 따로 안 하고 본식용 드레스랑 화장만 하시겠다고요? 요샌 다들 스튜디오 촬영을 해요. 남는 건 사진뿐이죠. 미리 신부 화장도 한번 받아보실 수 있고요. 그래야 나중에 본식 때 '화장이 나한테 안 맞는다'고 당황하지 않아요."(웨딩플래너 김모씨)
◇가격이 널뛴다
가는 곳마다 견적을 받아보니, 얼른 이해할 수 없는 관행이 많았다. 같은 드레스, 같은 스튜디오를 골라도 어느 컨설팅업체를 통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수십만원씩 차이 났다.
"요새 인기 많은 A드레스가게·B스튜디오·C미용실을 묶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 업체는 200만원을 부르고 다른 업체는 270만원을 부르는 식이었다. 웨딩박람회에서 만나면 "오늘 오신 분에 한해 거기서 얼마 더 깎아 드리겠다"고 했다. 같은 박람회장에서도 고객에 따라 들은 값이 달랐다.
가격은 각자 다르게 불러놓고, "도대체 원가가 얼마냐"고 물으면 약속이나 한 듯 '비밀'이라고 했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웨딩플래너들은 업체별 가격표를 보여주면서 "오늘 정말 좋은 가격에 가져가신다"고 하더니, 막상 거기 적힌 숫자를 취재팀이 메모하려고 하자 "적어 가는 건 안 된다"며 급히 표를 치웠다. "이 숫자, 밖에 나가면 절대 안 돼요."
드레스가게·스튜디오·미용실에 따로따로 전화하면 가격이 더 널뛰듯 했다. 국가 기밀이라도 다루듯 "유선상으론 알려 드릴 수 없고 얼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하는가 하면 "신부님은 개별 가격을 아실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덩이처럼 비용이 불어난다
신랑·신부가 계약하는 가격과 나중에 실제로 내는 가격 사이에도 격차가 있었다. 중간에 계속 추가 항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100원에 계약해도 뭔가 계속 덧붙어서 결국 120원, 150원을 내게 되는 구조였다.
그중 가장 원성이 자자한 게 "CD 사라"는 소리였다. 스튜디오 직원들이 촬영을 마친 예비 부부에게 "오늘 찍은 사진 원본을 몽땅 CD에 담아줄 테니 20만~25만원을 더 내라"고 했다. CD를 사겠다고 하면 이번엔 "5만원 더 내면 포토샵 해 드린다"고 한다(사진을 컴퓨터로 예쁘게 수정해주겠다는 뜻). "30만원 추가하면 액자 틀을 바꿔 드린다"고도 했다.
이런 추가 항목이 끝도 없었다. 처음엔 분명히 "사진·드레스·화장 합쳐서 250만원"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도우미 일당 따로 내셔야 하는 거 아시죠?" 했다.
◇"실장님 손맛"
허영심 자극하는 또 다른 예가 '실장님·원장님' 상품들이었다.
"실장님·원장님은 퀄리티(품질) 차이가 있죠. 경력이 있으니까 사진이 전혀 달라져요."(스튜디오 직원 박모씨)
"메이크업은 꼭 원장님한테 해달라고 하세요. 요샌 '실장 라인'은 아무 의미 없어요."(웨딩플래너 최모씨)
이 말 뒤에는 매번 "30만원 추가"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