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7부-2] 金서방 가진 건 朴서방도 가져야 한다는 '질투 경제학'

    입력 : 2014.10.29 03:07

    영국인 기자 눈에 비친 한국 부모

    앤드루 새먼 포브스 서울특파원
    앤드루 새먼 포브스 서울특파원

    이달 초 중학생 딸이 윌리엄 영국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빈의 결혼식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불쑥 물었다. "아빠, 왕세손빈 웨딩드레스가 한국 돈으로 4억원짜리라는 거 알고 있었어?"

    나는 영국인이지만, 그런 줄 몰랐다. 하마터면 분개해서 호통칠 뻔했다. '딱 한 번 입을 드레스에 4억원을 썼다고? 말도 안 돼!'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시 생각해서 답했다. "장차 왕비가 될 분이니까 어느 정도의 사치는 합리적이지, 뭐. 나라 이미지도 있잖아. 왕실은 돈이 많아."

    딸이 TV 보며 덧붙였다. "근데 아빠, 한국 신부들도 저거랑 비슷한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한대." 그런 욕망이 내게는 도리어 벼락부자의 심리로 느껴졌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부자가 자기 돈 많이 쓰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강남 신부들이 영국 공주처럼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글쎄, 행운을 빈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결혼할 때 돈을 많이 쓴다. 신랑 부모가 신혼집을 구해주고 신부 부모가 그 집을 채워주는 관습도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그런 관습을 따라가는 건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그동안 한국 경제가 성숙해진 데에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모든 사람이 어제보다 오늘 잘사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이젠 그렇지 않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은 세계 곳곳에 진출했다. 하지만 위에서 번 돈이 아래로 내려가는 '트리클 다운' 효과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업이 커진다 해도 해외 진출을 하는 거지, 일자리가 여기 많이 생기는 건 아닌 탓이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오기 전까지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저축을 많이 하는 국민 중 하나였다. 한국 정부는 내수 진작 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쉽게 신용카드를 만들고 아무나 대출을 막 해주다가 2002년 신용대란이 왔다. 이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가계 부채가 큰 국민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부모는 왜 그토록 자식 결혼 비용을 대주려 할까.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남만큼 해야 한다'는 문화가 개개인에게 주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다.

    한국인만큼 남들 눈에 신경 쓰는 집단주의적인 국민도 드물다. 김 서방이 가진 건 박 서방도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질투의 경제학'이 작동한다.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이런 심리가 엄청나게 증폭됐다.

    정보 통신 인프라가 탁월한 데다,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국민성까지 갖춘 것도 한 원인이다. 재벌 2세가 반드시 등장하는 TV 드라마를 포함해, 부(富)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대중문화도 한몫을 했다.

    이런 특징들 덕분에 한국인은 경쟁력이 강한 국민이 됐다.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는 개개인이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 '압력밥솥' 사회가 됐다. 아무리 김 서방네 형편이 사돈댁 형편을 못 따라가도, 사돈댁 기대에 맞추느라 사돈댁 수준으로 돈을 쓰는 식이다.

    하지만 고도성장이 끝난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들이 부자들처럼 돈 쓰고 싶어 하는 건 도무지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바라건대 앞으로 한국이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좀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면,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사고가 줄어들지 모른다. 나도 한국 여자와 결혼해 서울에서 딸 키우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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