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한 쌍 결혼하는 데 남자는 7545만원, 여자는 5226만원 든다. 이후 아이 하나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3억896만원이 또 들어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이후 내놓은 통계이다. 본지는 지난 2012년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연중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의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작은 결혼식'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취재팀이 조사 회사 메트릭스와 함께 부모에게 기댈 수 없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했다. 한 가정을 일구겠다는 꿈으로 들떠야 할 젊은이들 목소리에서 '박탈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중소기업 계약직 28세 미혼女]
부모에게 기댈 수 없는 신혼부부들이 우여곡절 겪는 모습을 보며 미혼 여성들은 복잡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중소기업 계약직 서지희(가명·28)씨가 세 친구 얘기를 했다.
◇첫 번째 선택
"한 친구가 남자친구와 잘 사귀다, 집에 한번 가보고 바로 헤어졌어요. 온 가족이 반지하 다세대 주택에 살더래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정들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했어요. 그때 친구는 25세였어요."
◇두 번째 선택
내년에 결혼하기로 날 잡은 다른 친구가 있다. 상대는 장손이다. 홀시아버지를 한집에 살며 모셔야 한다. 서씨가 "괜찮겠냐"고 묻자, 친구는 자신 있게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재산이 많다면서 그게 자기한테 올 거라고 했다. "능력 있는 남자보다 아버지가 부자인 남자가 이상형이었다"고도 했다. 놀랐다. "그런 걸 생각하고 실행하고 입 밖에 낸다는 게….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을 뿐 유별나게 약은 애도 아니었어요."
◇눈덩이가 굴러간다
또 다른 친구는 최근 아이가 생겨 갑자기 날을 잡았다. 남자친구와 둘이서 가진 돈 털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생각이었다. 집도 세간살이도 공평하게 돈 내서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태도를 바꿔 "전셋집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꼭 잘된 게 아니었다.
"집을 구해주신 건 고맙지만, '집을 해줬으니 채우는 건 네가 하라'고 하셔서…. 집안이 어려운 친구인데, 남들처럼 예물·예단 보내느라 오히려 처음 계획보다 돈을 더 쓰게 됐어요." 이런 얘기 들으면서 서씨도 자꾸 생각이 많아졌다.
◇"단칸방 얘기, 저희한텐 안 통해요"
서씨는 지방 출신이다. 대학 시절 기숙사에 살다가 졸업 직전 대학생 전세대출을 받았다. 정부가 전세금 7000만원을 집주인에게 대신 내주고, 서씨는 나라에 이자만 낸다. 2% 저리(低利)지만 2년 만기다. "집 구할 일이 막막하죠."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일자리는 서울에 더 많이 있다.
부모 세대는 "우리 땐 단칸방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딸에게 "그러니까 너도 단칸방 사는 남자와 결혼하라"는 엄마는 없다. 서씨가 "성공한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고생 끝에 이만큼 됐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성공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달라요. 어렵게 출발하면 자기 힘으론 못 올라가요. 계속 고만고만한 삶을 반복해요. 안정되고 싶어서 결혼하는 건데…. 결혼해서 굳이 지금보다 힘들게 살고 싶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