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취임한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은 선거 과정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공약으로 앞세웠다. 미술·음악·무용 등 예술 교육을 강화하고, 전(全) 생애에 일상적으로 스며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학교에선 입시에 치여 예술 교육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선진국은 문화예술 교육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왜 그런지, '문화예술 교육 강국' 영국·덴마크를 찾아 살펴봤다.

"여러분, 앞에 있는 골판지로 동물을 자유롭게 만들어보세요. 대신, 풀은 사용해선 안 됩니다."

지난 4일 오전 영국 런던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레이븐스번 예술대학 4층 강의실.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인 '소렐재단 예술디자인 토요클럽'의 강사 크리스 앨런씨가 외치자, 학생 20여명의 손길이 바빠졌다. "테이프는 지저분하니 쓰지 말자." "그럼 종이를 잘라 끼워볼까?"

지난 4일 영국 런던에 있는 레이븐스번 예술대학 강의실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골판지로 원하는 동물을 만들고 있다. 이 수업은 14~16세 청소년 중 누구나 원하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토요클럽'은 영국 디자인재단 '소렐재단'이 매주 토요일 아침 전국 41개 미술대학 및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14~16세 대상 미술·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무료로 30주간 교육받을 수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수업은 지난해부턴 영국 정부의 '국가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정돼 운영비 전액도 지원받는다. 앨런씨는 "자화상 그리기, 도자 공예 등 매번 프로젝트를 다르게 한다"면서 "'풀은 쓰지 말라'는 등 제한적 상황을 던져주고 창의적인 해결력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영화협회에서 영화 배우고, 극단원에게 연극 배워

유럽에서는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독일은 2000년대 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2년간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모든 아이에게 악기 하나씩'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프랑스는 1960년대 교사 문화예술 교육 운동이 벌어진 뒤 1980년부터 정부 차원의 문화예술 교육 정책을 수립했다.

영국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지역·민간단체의 자율적 운영'의 원칙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100만명 아이에게 문화예술을 가르치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Creative Partnership)'에 이어, 2010년엔 교육부와 문화미디어체육부가 손잡고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공표했다. 3년간 '소렐재단 토요클럽' 등 공공·민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들에 3억4000만파운드(약 5800억원)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가령 'BFI 필름 아카데미'의 경우, 영화인을 꿈꾸는 16~19세 학생들이 영국영화협회(BFI)에서 영화 제작 방법을 배운다. 1년 과정 수업료는 불과 25파운드(약 4만2600원). 연극 교육 프로그램인 '셰익스피어 학교 축제'는 왕립셰익스피어극단 단원들이 학생들에게 연기부터 대본 집필까지 직접 가르친다. 지금까지 10만명이 참가했다.

소렐 허시버그 소렐재단 교육책임자는 "과학자가 되든 수학자가 되든 창의성이 향후 필수 능력인 만큼 나라가 키워주겠다는 것"이라며 "문화예술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영국 내 200만개 '창조 산업' 일자리에 투입될 가능성도 열린다"고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예술 교육 못 받으면 안 돼"

이처럼 문화예술 교육이 강조되는 건 "창의성은 어린 시절 예술 체험에서 비롯되며, 이 혜택에선 누구도 배제돼선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문화예술 교육은 '보편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보편 교육을 추구하는 역사 체험 프로그램 '헤리티지스쿨'은 전국 200여개 초등학교에 '지역 헤리티지 매니저'를 파견해 더 많은 학생이 박물관 견학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국립청소년음악기구' '음악무용조직'처럼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을 선별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루이 기브스 헤리티지스쿨 책임자는 "어린 시절 문화 경험은 성인 이후 성취감과 자신감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아무런 차별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