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역사를 은폐하고 조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 세력에게는 결코 미래가 없습니다."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 시이 가즈오(志位和夫·60) 위원장은 아베 정권이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하고 이를 사죄한 '고노(河野)담화'를 무력화하려는 것에 대해 "아베 정권이 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인권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일본의 국제적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를 통해 밝힌 진실을 정면에서 인정하고, 역사를 위조하는 주장에 단호히 반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의 폭주(暴走)에 대한 주변국 우려에도, 민주당 등 일본 내 견제 세력은 실정(失政)·내분 등으로 최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베 정권의 심판자로 각광받는 곳이 일본공산당이다. 일본공산당은 현재 중의원 8명, 참의원 11명 등 국회 의석을 19명 확보했는데, 직전 선거 때보다 배로 늘었다. 작년 도쿄도(東京都) 의회 선거에선 민주당을 꺾고 제1야당에 올랐다.
일본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인 시이 가즈오(志位和夫·60) 위원장을 15일 한 시간가량 전화 인터뷰 했다. 그는 25~26일 서울서 열리는 한·일의원 연맹 총회에 일본 측 부회장으로 참석하기 위해 24일 한국을 찾는다. 27일엔 고려대에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을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를 무력화하려는 것에 대해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정당화를 막는 즉,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이 위원장은 "고노담화 무력화 시도는 그 자체가 모순이고 성립되지 않는다"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었다. 우선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증명하는 문건을 찾지 못한 것을 근거로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논리"라고 했다. "납치·유괴는 당시 국내·국제법으로도 명백한 범죄행위였습니다. 정부나 군이 이를 공문서로 작성했을까요? 설령 그런 문서가 있었더라도 패전 후 없앴을 겁니다."
그는 두 번째 문제점으로 고노담화 발표 후 20년 사이 담화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일본 정부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1991~2001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피고로 사죄·배상을 요구한 재판이 10건 있는데, 한국 관련을 포함한 8건에서 일본 법원이 위안부 피해·실태를 사실로 인정하는 판결을 냈다는 것. 시이 위원장은 "2003년 도쿄 고등재판소 판결에서도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논란의 여지 없는 사실'로 인정했다"면서 "아베 정권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는 강제성을 인정하는 외국 공문서 중 적어도 2건은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 작성 때부터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 2건은 네덜란드 동인도령(현 인도네시아) 세마랑의 위안소 관련 전범재판 문서와 도쿄재판 판결에 명기된 중국 남부 구이린의 강제 연행 사례다.
시이 위원장은 아베 정권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해도 일본 시민사회의 저항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헌법 9조 훼손, 집단자위권 용인 등에 국민의 5~6할이 반대한다는 것. 그는 일부 일본 우파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일본인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다고 하지만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일본인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시이 위원장은 "먼저 일본이 과오를 청산해야 한다"면서 "그런 다음에 한국과 미래를 향한 우호 교류에 당당하게 나서고 싶다"고 했다.
■ 시이 가즈오 위원장
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동갑내기(1954년생)로, 1993년 국회에 함께 입성한 이후 21년간 아베 정책에 맹렬히 반대해 온 '숙적(宿敵)'이다.
1973년 일본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79년 도쿄대 공학부 물리공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7번 연속 당선됐다. 2000년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06년 일본공산당 당수 자격으로는 처음 한국을 공식 방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했다. TV드라마 '이산'을 좋아하는 등 한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