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한다… 억압된 세상을

입력 2014.10.02 03:05

[美 페미니스트 작가 키키 스미스]

해부학 책 접한 뒤 몸을 소재로 삼아… 인체 구조 알려고 응급 의료도 배워
오늘부터 서울 리안갤러리서 개인전

"늘 집에서 일했어요. 일과 삶이 통합되는 게 좋거든요."

지난 24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5층짜리 브라운스톤(19세기 미국 동부 상류층 저택) 건물 3층에서 키키 스미스(60)가 작업대에 앉아 말했다. 멀리서 온 이방인을 향해 잠시 인사를 건네는가 싶더니 이내 하던 일로 되돌아갔다. 10월에 파리에서 있을 아트페어 '피악(fiac)'에 낼 작품에 물감으로 색을 덧입혔다. 시선은 마주 앉은 기자가 아니라 작품을 향했다.

인터뷰 내내 작업에서 눈을 떼지 않던 키키 스미스는 사진 찍을 때 비로소 눈을 들었다. 그녀 뒤로 최근 사슴 이미지를 넣어 짠 직물 작품이 걸려 있다. 자신의 팔에 촘촘히 문신으로 새긴 파란색 별을 작품 안에도 그려 넣었다
인터뷰 내내 작업에서 눈을 떼지 않던 키키 스미스는 사진 찍을 때 비로소 눈을 들었다. 그녀 뒤로 최근 사슴 이미지를 넣어 짠 직물 작품이 걸려 있다. 자신의 팔에 촘촘히 문신으로 새긴 파란색 별을 작품 안에도 그려 넣었다. /김미리 기자

18년째 산다는 집은 그녀의 보금자리이자 작업실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여성의 몸을 소재로 삼아 여성 해방을 말했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는 스스로를 '가정주부 작가(housewife artist)'라고 불렀다.

"아버지에게 배운 방식이에요. 아버지는 거실에서 모형을 만들고 조각하셨어요. 그 옆으로 여동생들과 자유롭게 뛰어다녔죠." 그녀의 아버지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 조각의 선구자인 조각가 토니 스미스(1912~1980), 어머니는 유명 배우 제인 로렌스(1915~2005)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정규 교육보다 더 영향을 미친 건 경험이었다. "부모님은 무엇이 되라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대신 집에 드나들던 아버지 친구들에 둘러싸여 예술에 자연스레 노출됐지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10대 때 예술 대신 직업학교에서 제빵기술을 배웠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건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한 친구가 해부학 책인 그레이스 아나토미(Gray's Anatomy)를 보여줬다. 신비로운 언어를 만난 것 같았단다. 1979년 몸을 토대로 한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 스승과 같았던 아버지가 죽고, 1988년 여동생 비비 스미스가 에이즈로 죽었다. 신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업에 더욱 탐닉했다. 인체 구조를 정확히 보기 위해 응급의료 전문가 코스도 수료했다. 겉모습이 아닌 인체 내부 모습이 본격적으로 작품에 반영되는 시기이다. 피가 담긴 12개의 유리병으로 된 작품(Game Time, 1986), 배설물이 항문으로 길게 빠져나와 있는 듯한 여인(Tale, 1992), 오줌 누는 여인(Pee body, 1992) 등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이어졌다.

2001년작 ‘Pyre Woman kneeling Ⅱ’ 사진
2001년작 ‘Pyre Woman kneeling Ⅱ’. 양팔을 뻗어 신을 향해 울부짖는 듯한 모습의 여인상이다.

"몸을 소재로 쓴 건 사람들에게서 사상, 정치, 경제 같은 인체 외부를 둘러싼 각종 사회적 관념들을 분리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요즘은 자연, 동물에 관한 작업에 몰두해요." 그녀 뒤로 최근 사슴 이미지를 넣어 짠 태피스트리(직물 장식)가 보였다. "기술 발달로 몸을 둘러싼 사회·정치학적 환경이 급격히 변했어요. 이젠 급진적인 주제보다는 자연스러운 주제에 눈길이 가네요." 자수, 패브릭 같은 여성적 소재도 즐겨 쓴다. '소녀 취향 예술(Girlie art)'이란 조롱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던 작업 방식, 연약한 질감을 이용한 거예요."

특히 동양적 소재인 종이를 많이 쓴다. 종이탈을 만드는 방식대로 종이와 풀을 섞어 조각을 만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차이나타운에서 종이풍선을 사준 적이 있어요. 편편한 종이를 접으면 볼륨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녀는 "한국에는 '종이 장판' 문화가 있다는데, 그걸 보러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급진적 작가에서 자연친화적 작가로, 롤러코스터 타듯 요동쳐온 키키 스미스의 삶을 담은 작품이 한국에 온다. 2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그녀의 조각 13점이 전시된다. 문의 (02)730-2243

☞키키 스미스

1954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출생.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다. 조각, 회화, 장식미술 등을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 199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프로젝트’ 전시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2012년 미 국무부 예술훈장을 받았다. 2006년 타임지(誌)로부터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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