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부장판사.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동료 재판장을 향해 "입신 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이라는 비방 글을 올린 김동진(45)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에 대해 법원이 징계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래 성남지원장은 15일 김 부장판사를 불러 글을 쓴 경위와 목적 등을 들었으며, 대법원도 사실 관계 파악에 들어갔다. 야권과 사회 일각에선 "법관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법리 발전을 위한 비판은 허용돼야 한다"며 김 부장판사를 두둔한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법원징계법과 법관윤리강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로 엄중히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 사법부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법관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우리나라 법관징계법(法)은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할 경우' '법관이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징계하게 돼 있다. 법관윤리강령(綱領)도 '법관은 학술 목적 등이 아닌 경우에는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평가하거나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2009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낸 권고 의견 3호는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비판은 법 논리 발전을 촉진할 수 있어 법관의 확정된 사건에 대해 비평하거나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법관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고려할 때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진행이 예상되는 사건에 대한 의견 표명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된 뒤에는 자유롭게 비판이 허용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의견 표명을 금지한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고, 당사자의 판결 불복이나 불필요한 상소 유발 등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해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외국서도 他판결 비판 금지"

법관의 다른 법관 판결 비판을 금지한 것은 세계 사법부가 보편적으로 규정한 법관 윤리다. 지난 2001년 인도 벵갈루루에서 UN 후원으로 '사법부 청렴성 강화에 관한 사법그룹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벵갈루루 법관행동준칙' 초안이 만들어져 이듬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대법원장 원탁회의에서 "전 세계 법관이 지켜야 할 준칙"으로 정식 채택됐다. 벵갈루루 법관행동준칙은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법관은 의견 표명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미국의 연방 법관 행위규범도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공개적 의견 표명을 삼가야 한다'고 돼 있다. 특히 미국은 법관뿐만 아니라 법원 직원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 이를 어긴 법관에게는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선고받은 미식축구 선수 O J 심프슨(Simpson) 사건 당시 뉴저지주 법원 판사가 의견을 밝힌 데 대해 뉴저지주 대법원은 "사법부 신뢰를 손상할 수 있다"며 해당 판사의 의견 표명 활동을 중단시켰다. 또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TV에 출연해 다른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 관해 토론을 벌인 판사에 대해서도 견책 처분을 내렸다.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자기가 맡은 사건에 대해 공개 논평한 판사가 견책 처분을 받았다. 자신이 내린 판결을 파기한 상급심을 비난한 메인주 법관은 견책과 1주일 정직, 1000달러 징계금 처분을 받았다.

독일 법관연합도 지난 1983년 "법관과 검사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재판 또는 결정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법 독립의 신뢰가 위협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서울의 한 법대 교수는 "김동진 부장판사의 원세훈 사건 1심 재판장에 대한 비방 내용이나 수준을 보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규정한 법관 윤리 규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잘못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