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명의로 북한에 정권 수립 66주년 축전(祝電)을 보내면서 중국의 대북 관계 기본 원칙인 '16자(字) 방침'을 삭제했던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16자 방침'이란 북·중 간에 '전통 계승, 미래 지향, 선린 우호, 협조 강화'의 정신을 지켜나가자는 것으로 2001년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북·중 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이후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도 북한에 축전을 보낼 때면 '16자 방침'을 빠짐없이 언급했다. 지난해 9월 시 주석이 보낸 북한 정권 수립일 축전에도 이 문구는 포함됐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빠진 것이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조선 인민이 앞으로 경제와 사회 발전에서 더 큰 성과를 이룩할 것을 충심으로 축원한다"며 "우리는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를 강화해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복리를 가져다주고 지역의 번영과 평화에 적극 이바지할 것"이라고 했다. 축전은 또 양국 간 친선을 "공동의 귀중한 재부"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일 축전 내용을 소개하면서 '16자 방침'을 언급하지 않았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축전 원문에서 16자 방침만 빼고 보도했을 가능성은 작다"며 "중국이 의도를 가지고 이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북·중 관계 악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대북 관계의 '새 틀'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미로 분석되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혈맹에 기초한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북·중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시진핑 지도부는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곧바로 제재를 가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왔다.
중국은 또 축전에서 '중·조 두 나라는 산과 강이 잇닿아 있는 친선적인 이웃 국가'라는 상용 문구도 쓰지 않았다. 전통적 혈맹(血盟)이라고 불려온 양측 간 관계가 갈수록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방중(訪中)을 추진했지만 중국이 핵 문제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었다.
북·중은 작년 7월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 부주석의 평양 방문 이후 고위급 교류도 중단한 상태다. 북·중 간 원유 거래는 반년 넘게 0인 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북한은 중국에 대해 "줏대없는 나라"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북·중 모두 자기 뜻에 맞는 새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팽팽한 기 싸움을 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16자 방침
장쩌민과 김정일이 2001년 합의한 중국의 대북(對北) 관계 기본 원칙. 북·중 양국이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조강화'라는 16자의 정신을 지켜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