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 뺏어라… 성과가 높아진다"

입력 2014.08.30 03:00

[인터뷰]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 존 리스트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과정… 내겐 현실이 곧 '실험실'이죠
기부는 남 돕기 위한 것보다 자기만족, 투표도 마찬가지로 허영심에서 시작
인간의 행동 뒤 숨은 동기 밝혀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 책 사진

시험장에 들어간 남학생들은 귀를 의심했다. "점수가 지난번보다 나아지면 20달러를 주겠다"고 교사는 말했다. 열세 살에게 20달러는 스케이트보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2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며 교사는 단서를 달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이 돈을 뺏겠다." 20달러로 뭘 하고 싶은지 종이에 적어 낸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시험에 임했다.

몇 해 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행동경제학자 존 리스트(List·46) 시카고대학 교수는 이 A집단을 비롯해 학생들을 여러 무리로 나눠 '인센티브 효과'를 실험했다. B집단에는 "결과가 나온 즉시 점수가 오른 학생에게 20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C집단은 "성적이 오른 학생에게 시험 한 달 뒤에 20달러를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금전적 보상이 점수에 미친 영향은 학급당 학생 수를 3분의 1로 줄이거나 교사의 자질을 높였을 때 나타나는 효과만큼 컸다. 인센티브 효과는 A집단이 B집단보다 더 높았다(C집단엔 나타나지 않았다).

27일(한국 시각 28일) 시카고대학에서 만난 리스트 교수는 "이 실험으로 저학년 아동이나 10대의 세상은 온통 현재가 지배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에게 동기를 일으킬 방법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이 대학 경제학과 건물은 노트르담 성당처럼 고딕 양식이었다. 무작위 현장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 뒤에 숨은 동기를 밝혀낸 리스트 교수도 노벨상 후보로 거명된다. 최근 번역된 그의 저서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안기순 옮김, 김영사)를 들고 경제학과 학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행동경제학이란 뭔가?

"경제학은 추상적 이론이 지배해온 학문이다. FDA(미국식품의약국)는 신약을 허가하기에 앞서 무작위 임상시험을 거친다. 그런데 정작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러주는 경제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정책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행동경제학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의 일부라는 사실을 숨긴 채 가설을 테스트한다. 내겐 현실이 '실험실'이다."

―인센티브 효과란 결국 '돈이 전부'라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인센티브에는 금전적 보상도 있고 사회적 인정도 있다. 10대 청소년에겐 돈이 장땡이지만 유치원생에겐 장난감이나 스티커가 먹힌다. 성인은 더 복잡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선의(善意)로 알루미늄 캔을 모아 재활용 센터에 가져간다면 이웃들이 나를 칭찬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캔 하나당 5센트를 주겠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이웃들은 나를 구두쇠라 손가락질할 테고 나 또한 환경 보호에 열의가 식어버린다. 인센티브가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존 리스트 시카고대학 교수는 행동경제학을 집에서도 실천한다. 그는 “‘배변 훈련을 잘하면 디즈니랜드에 데려가겠다’ 했더니 딸이 하루 만에 기저귀를 뗐다”고 했다
존 리스트 시카고대학 교수는 행동경제학을 집에서도 실천한다. 그는 “‘배변 훈련을 잘하면 디즈니랜드에 데려가겠다’ 했더니 딸이 하루 만에 기저귀를 뗐다”고 했다. /시카고=박돈규 기자

―당신은 1996년 박사 학위를 받고 학계 일자리 150개에 지원했는데 면접하자는 연락은 딱 한 곳뿐이었다.

"낙담했다. 만나고 싶지도 않다니, 학계가 날 원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았다. 나는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일류가 아닌 와이오밍대학 출신이라서 차별을 받았다. 플로리다대학조차 날 부르지 않았다면 아버지처럼 트럭 운전사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열심히 연구했다(그는 애리조나대학, 메릴랜드대학을 거쳐 2005년 시카고대학에 임용됐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한 것과 달리 나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리스트 교수는 사회를 개선할 만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기면 실험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에는 남녀의 성별 격차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탄자니아 부계(父系)사회와 인도 모계(母系)사회를 찾아가 실험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한국도 남성이 여성보다 임금을 41% 더 받기 때문에 귀가 솔깃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장에서 남녀 임금 격차는 천성 때문인가 양육 때문인가?

"금전적 보상을 내걸고 양동이에 테니스공을 던져 넣는 실험을 해봤다. 여성은 경쟁을 회피하는 게 아니었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경쟁을 즐겼다. 즉 양육의 영향이 크다."

―'남성은 아름다운 여성이 부탁할 때 더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현장 실험을 해보면 우리가 기부하는 이유는 타인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이익(만족) 때문이다. 그 작동 원리를 알면 기부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요즘엔 어떤 실험을 하고 있나?

"미국에서는 투표율이 50%를 밑돈다.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까닭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자기가 투표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남을 의식하는 허영심 덩어리다."

동메달이 더 행복한 이유

획득 프레이밍과 손실 프레이밍 비교 표

중국의 한 전자제품 공장에서 진행된 인센티브 실험. 각각 '획득 프레이밍(Gain Framing)', '손실 프레이밍(Loss Framing)'이라고 부르는데 당근(목표를 넘으면 상여금을 받는다)과 채찍(목표를 밑돌면 상여금을 빼앗는다)을 결합한 것이다. 상여금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미치는 효과가 상여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보다 컸다. 하마터면 빈손으로 돌아갈 뻔한 동메달리스트와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은메달리스트의 표정을 상상해도 좋다. 리스트 교수는 "손실은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라며 "기업은 생산성을 올리려고 해고 카드로 직원을 위협하면서도 손실 프레이밍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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