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철피아 논란' 조현룡의 '작품' 함안驛 가보니...논밭 한가운데 KTX승객 日평균 39명

입력 2014.08.24 11:53 | 수정 2014.08.24 13:26

지난 8월 5일 서울역에서 아침 5시50분에 출발한 KTX 401 열차는 아침 9시5분쯤 경남 함안역에 진입했다. 출발한 지 3시간15분 만이었다. 함안역에서 하차한 승객은 기자를 포함해 10명 남짓. 정원 965명의 KTX 열차가 멈춰선 함안역 3번 플랫폼은 텅텅 비어있었다. 서울행 KTX가 정차하는 반대편 2번 플랫폼도 텅 비긴 마찬가지.

1분가량 정차한 KTX는 다음 역인 진주역을 향해 더디게 움직였다. 플랫폼에서 작동 정지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 1층 대합실로 갔다. 승객이 없긴 1층 대합실도 매한가지. 열차표를 파는 매표창구도 한 곳이 전부였다. 역무원을 벨로 호출하는 구조였다. 편의점 등 부대시설은 전무했다. 놀이방, 수유실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텅텅 비었다. 역사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는 콜택시 한 대가 고작이었다. 읍내로 향하는 공용버스는 하루 8대라고 했다.

함안역 역무 관계자에 따르면, 함안역을 이용해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는 하루 열차 이용객은 120명가량. 이 중 KTX 이용객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함안역 관계자는 “오늘 KTX 승객은 25명 정도다. 방학이라 이용객이 좀 늘어난 편”이라며 “2012년 말 KTX 개통 초기에는 하루 40명 정도 됐는데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2012년 경남 함안군 함안면에 들어선 신설 함안역.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함안역 남쪽 4번 출구 밖으로 나가자 푸른 논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역사를 뒷받침할 주변 상업시설은 전무했다. 역사 북쪽 1, 2, 3번 출구도 마찬가지였다. 나지막한 단층 농가들만 드문드문 보였다. 철로 아래 역사가 있는 선하(線下)역사 함안역은 논두렁에 내려앉은 UFO 같아 보였다. 고가선로 아래 그늘에는 지역 주민들이 아침 뙤약볕을 피해 텐트와 돗자리 옆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함안군은 창원시 서쪽에 자리한 인구 6만의 농촌. 연면적 2493㎡의 함안역은 경남 함안의 관문역이다. KTX를 비롯 ITX-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2013년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함안역을 이용한 철도여객은 7만3804명. 이 중 KTX를 이용한 사람은 1만4317명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일(日)평균 39명이 함안역에서 KTX를 승하차했다.

논두렁 위에 텅 빈 함안역을 만든 사람은 이 지역 출신 의원인 조현룡(69) 의원(새누리당)이다. 경남 함안, 의령, 합천을 지역구로 둔 조현룡 의원은 철도시설업체인 삼표이앤씨로부터 억대 금품을 수뢰한 혐의로 지난 8월 6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7일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삼표이앤씨는 철도철장과 초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신분당선 사장을 지낸 신광순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업체다.

조현룡 의원은 함안군 군북면이 고향이다. 인근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뒤 국가고시 9급에 합격해 철도청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옛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02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전신인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부이사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후신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상임고문, 중국사업추진단장 등을 지내고, 2008년 8월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 올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전국의 철도와 철도역 건설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함께 철도 부채의 양대 주역이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부채는 18조2000억원. 지난 7월에는 조 의원의 후임인 김광재 전 이사장이 수뢰 혐의로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투신자살한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조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역점사업 중 하나가 경전선 마산~진주 간 복선전철화였다. 총 2조2103억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이 중 함안~반성(진주) 구간 20.4㎞는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으로 복선화를 진행했다. 총 사업비는 3383억원. 민간이 초기자금을 투입해 준공해서 국가에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민간은 관리운영권을 쥐고 정부로부터 20년간 임대료를 받는 식이었다. 결국 초기자금만 사업자가 부담할 뿐이지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었다.

이에 현대건설을 위시한 민간 투자자들은 ‘가야철도’란 특수목적법인(SPC)를 꾸려 해당 구간 사업을 따냈고 함안역 건설을 시작했다. 함안역 앞에 있는 정초석을 보니 당시 조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사업의 주무관청으로 사업 전반을 책임관리했다. 이 중 함안역과 군북역의 이전 신축은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두 역사 건설에만 111억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의문은 시골역에 불과한 함안역 플랫폼을 무려 420m로 설계한 것이다. 기관차 2량, 동력차 2량, 객차 16량 등 총 20량으로 편성된 KTX 규격이었다. 대개 경전선 시골 역사는 4~8량 편성 무궁화호가 정차 가능한 규모로 짓는다. 인구 6만의 농촌에 불과한 함안역 역시 10량 규모의 플랫폼으로 지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함안역은 KTX 정차역도 아니었다. 20량 KTX용 플랫폼 건설을 위해서는 부지 매입과 각종 신호, 전기장비 등 역사 건설비가 10량 규모의 갑절로 들어간다.

하지만 ‘가야철도’는 수지타산도 불분명한 함안역을 KTX 정차 가능한 20량 규모 플랫폼으로 건설했고, 주무기관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측도 이를 허용했다. 의문은 2012년 5월 풀렸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3년 임기를 마친 조현룡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다. 출마 일성은 함안역 키우기였다.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함안역 KTX 정차였다.

2012년 9월 지역주민 2만1000명의 서명을 받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를 비롯 국회와 코레일 등 관계 기관에 전달했다. 다음 달 국토해양부에 대한 국정감사 때는 함안역 정차를 이슈로 제기했다. 당초 국토해양부의 방침에 따르면 마산~진주 49.3㎞ 구간은 KTX 속도 저하 문제와 수송수요 부족 등으로 중간정차역 없이 마산, 진주 2개역에만 KTX가 정차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반면 조현룡 의원은 국정감사에 나온 주무부처 장인 권도엽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과 김한영 당시 교통정책실장을 상대로 ‘함안역 정차’를 위한 압박 작전을 개시했다. 피감기관 고위 관료들은 조현룡 의원의 국토해양부 후배 공무원들이었다.

지금은 폐역이 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있던 옛 함안역.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2012년 10월 국토해양부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 회의록에 따르면, 조현룡 의원은 “좀 화가 나서 내가 질의를 하게 됐다”며 국토해양부의 함안역 수요예측이 엉터리로 됐음을 지적했다. 원래 국토해양부가 예상한 함안역 하루 이용인원은 246명. 반면 조 의원은 “내가 함안에 살고 있고, 함안에 지역구를 둔 사람이야”라며 국토해양부의 예상숫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함안 인구는 7만명이고, 군북역은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곳으로 7000명 인구”라며 “이 자료가 어디에서 나온 숫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리고 “도대체 말이야 이런 부실한 자료를 내 가지고 (권도엽) 장관님의 정책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허위사실을 냈을 경우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고 있느냐”며 김한영 실장에게 호통을 쳤다.

“함안군뿐만 아니라 인접지역인 의령군, 마산합포구, 고성군의 주민들까지 모두 함안역을 이용하게 돼 현재 거주인원인 약 14만명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조 의원의 주장이었다. 13개의 산업단지(853만6000㎡)가 조성 중에 있어 향후 460여개의 업체와 2만5000명의 근로자 수요를 이끌어 낼 수 있고, 2014년 39사단 이전으로 유동인구(4500명)가 발생한다는 근거였다.

하지만 문제는 조현룡 의원이 내세운 ‘14만’의 출처다. 대표적인 것은 함안역의 잠재 이용인구에 마산합포구를 포함시킨 것. 마산 합포구는 옛 마산시청이 있던 마산의 구도심이다. 2010년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창원시’로 통합출범하면서 마산합포구는 행정구 중 하나로 재편됐다. 마산합포구청에 따르면 현재 구 인구는 18만3000명가량이다.

마산합포구 주민들이 시내버스 등 교통편 연계가 잘 되고, 발착 열차도 월등히 많은 기존 ‘마산역’을 놔두고, 교통도 불편하고 발착하는 열차편도 태부족인 함안역을 이용하지 않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는 마산합포구 소재 고등학교(마산고)를 졸업한 조 의원이 더 잘 알 것이란 지적이다. 결국 함안역 KTX 정차를 국토해양부와 코레일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마산합포구’ 인구를 갖다붙여 수요예측을 뻥튀기한 것.

실제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코레일의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함안역을 이용한 사람은 7만3804명이다. 무임승차를 제외하고 KTX, ITX-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모든 열차편을 승하차한 승객들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202명이다. 국토교통부의 함안역 예상 이용인구(246명) 역시 과대평가됐지만 그나마 근접했던 셈이다.

조현룡 의원은 “경전선 KTX의 경우 최고시속 150㎞로 운행될 예정이고, 역간거리를 살펴볼 때 크게 속도가 저하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함안역 정차를 강행했다. 가뜩이나 경전선 KTX의 경우 고속전용선을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를 최대 150㎞밖에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차역을 최대한 줄여 열차의 전체 표정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고속열차 운영의 정공법이다.

또 조 의원은 “KTX가 정차할 수 있도록 큼직하게 지어둔 (함안)역사를 활용하지 않으면 낭비다”는 논리를 폈다. 이를 위해 “KTX가 함안역에 정차할 수 있도록 모든 기반시설이 조성돼 있다. 새로운 시설을 보강할 필요도 없고, 홈 길이도 420m로 KTX가 설 수 있도록 딱 되어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일단 큼직하게 지어 놨으니, KTX를 투입해야 한다”는 본말전도였다. 그리고 “(권도엽) 장관님께서 판단하시고 상행선 4회 정도를 정차할 수 있도록 검토를 해서 다음 국토부 국감 때 확실한 답변을 부탁한다”고 했다.

결국 권도엽 장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검토해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당시 국토해양부 국정감사가 끝난 지 한 달 만인 2012년 11월 국토해양부와 코레일은 입장을 바꿔 경전선 KTX의 함안역 정차를 결정했다. 이후 2012년 12월 5일부터 함안역에는 상하행 2회씩 경전선 KTX가 중간정차를 시작했다. 경전선 KTX 최초의 군(郡)지역 정차였다. 조현룡 의원은 2012년 12월 5일 개통식에 내빈으로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다. 조 의원은 “함안역 KTX 정차는 지역주민들의 열망이 이끌어낸 결과”라며 “교통철도 전문가로서 교통낙후지역인 경남 내륙지방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전선 KTX는 함안역에 정차하면서 고속열차가 아닌 무궁화호와 다를 바 없는 완행열차로 전락했다. 함안역 정차를 위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다. 코레일이 발표한 경전선 KTX 시간표에 따르면 마산역에 선 열차는 11분 만에 함안역에 정차한다. 또 함안역에 선 KTX는 또다시 18분 만에 진주역에 정차한다. 상행선의 경우는 진주에서 함안은 19분, 함안에서 마산은 12분 걸린다.

특히 인구 34만 진주 시민들의 시간손실이 컸다. 진주역은 마산역과 함께 코레일의 관리역으로 경남 서부의 중심역이다. 진주역의 지난해 철도 이용객은 46만7643명. 이 중 KTX 이용객은 15만5465명이다. 함안역과 비교해 전체 여객은 6배, KTX 이용객은 10배나 더 많다. 경전선 KTX가 진영역(김해시)을 비롯해 창원중앙역, 창원역, 마산역에 서는 것도 모자라 함안에까지 세우는 셈이다.

더욱이 경전선에 KTX-산천 열차가 투입이 결정되면서 애써 지어둔 20량의 장대 플랫폼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KTX-산천은 기관차 2량과 객차 8량 등 10량으로 구성돼 있다. 20량 규모의 420m 플랫폼 자체가 필요없는 셈. 코레일 열차편성표에 따르면 함안역에 정차하는 하루 4편의 KTX 열차 중 3편은 KTX-산천이다. 결과적으로 함안역 플랫폼의 절반은 하루 24시간 중 KTX 한 편의 정차시간 1분만 활용된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 신설 함안역의 420m 길이의 장대형 플랫폼.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역설은 함안역이 공회전하는 사이에 함안군 가야읍의 함안버스터미널은 붐빈다는 사실이다. 함안역이 새로 지어지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터미널이었다. 기자가 찾아간 함안버스터미널은 고령의 노인들과 외국인 근로자들로 북적댔다. 터미널 안에는 편의점을 비롯 분식점, 약국과 병의원 등 부대시설도 빼곡했다. 부대시설 하나 없이 텅 빈 함안역과 대조를 이뤘다.

사실 함안역은 새로 이전하기 전만 해도 비록 낡았지만 알짜 역사였다. 역사 주위로 함안군청과 군의회, 함안경찰서 등 관공서와 농협·경남은행 등 금융기관이 포진해 있고, 지역 최대 시장인 가야시장이 철도연변에 형성돼 있어 접근성은 훨씬 더 좋았다. 이날 찾아간 함안군 가야읍의 2층짜리 옛 함안역은 차량등록사업소로 바뀌어 있었다. 옛 역사 뒤로 철로와 자갈만 남아 있었다.

함안역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함안역은 지금의 위치보다 읍내에 가까운 쪽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래 역사를 짓기로 예정한 곳에서 성산산성과 아라가야 고분 등 문화재가 나오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국토해양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은 원래 예정 노선을 피해 읍내와 더 먼 곳에 역사 신설을 강행했다. 결국 함안역이 읍내와 멀어져 버렸고 더 외면받게 됐다는 것이었다.

반면 접근성을 앞세운 함안버스터미널은 지난해 12월부터는 서울남부터미널과 연결하는 하루 4편의 신규 노선까지 개설하며 새 함안역과의 정면대결을 선포하고 나섰다. 함안터미널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 4편. 함안역에서 출발하는 KTX의 2배다. 또 시외버스 운임은 2만2400원으로, 함안에서 서울역까지 KTX 성인 일반석 요금(4만9900원)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버스는 28인승 우등좌석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연히 함안역 대신 함안버스터미널에 몰린다. 함안버스터미널의 한 관계자는 “가야읍내에서 함안역까지 가는 데 시간은 10분인데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으로 비싸 요금만 7000원이 나온다”며 “하지만 KTX는 시간편도 많이 없어서 시외버스가 더 싸고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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