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남의 바다에 미국이 왜 끼냐구? 워싱턴 포스트 사설 파문

  • 뉴시스
    입력 2014.08.22 11:08

    워싱턴 포스트가 사설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의 동해 표기 지지를 정면 비판해 논란이 일고 있다.

    WP는 지난 19일 ‘북버지니아의 한국인들에 대한 극단적 영합’(Pandering to Northern Va.’s Koreans is going to extremes)’이라는 사설에서 “버지니아의 정치인들이 동해 표기를 앞다퉈 공약, 이 지역 한인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 한다”면서 “이는 버지니아 최대 투자국인 일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며 남의 나라 바다 문제에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5월 버지니아 페어펙스 카운티 정부가 청사 내에 건립한 위안부기림비에 대해서도 남의 나라 비극을 추모하는 조형물이 청사 내에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싸잡아 비판해 한인사회가 격분하고 있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 전문부터 보자.(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 ‘선거가 있는 해엔 소수계의 환심을 사려 하는 게 미국 정치문화의 단면이지만 때로는 자제하는 게 현명하다. 북버지니아에서 올해 출마한 후보자들이 이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한인 커뮤니티에 영합하기 위해 앞다퉈 나서고 있다. 그것까지는 좋다. 정치인들이 역사가들의 판단까지 대체하려고 하는것만 빼면 말이다.

    현직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연방의회 버지니아 10지역구에서 공화당 후보인 바바라 컴스탁 주의원이 당선되면 한국과 일본이 다투고 있는 문제를 의회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 다툼은 미국의 주들이 많은 한국인들이 ‘동해’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해’의 이름을 부인하는 학교 교과서들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내용이다.

    버지니아 인구 분포로 볼 때 정치인들이 한국 편을 드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북버지니아엔 8만2000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이는 일본계의 네 배에 달한다.

    그러나 국제 문제에 특정한 지식이 없는 캄스탁 후보와 (민주당)파우스트 후보가 미국의 두 동맹이 벌이는 치열한 다툼에 쓸데없이 끼어드는 이유를 묻고 싶다. 일본은 버지니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이다. 테리 맥컬리프(민주당) 주지사는 지난해 선거 캠페인을 할 때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교과서를 버지니아주가 구입하는 입법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지사 당선 후 현실적으로 일본의 반대에 직면했고 그의 ‘열정’은 시들었다.(비록 결국에는 조용히 법안에 서명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페어팩스 카운티가 정부청사 중심에 2차대전 때 일본에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을 기리는 메모리얼 가든을 세운 선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일본 군인들을 위해 매음굴에 끌려간, 이른바 ‘위안부 여성들’의 고통과 학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페어팩스 카운티는 다른 민족과 국가 혹은 역사적 불만에 대해서도 청사 중심에서 기리는데 동의할 건가? 영국인들에 의해 핍박받은 아일랜드인을 기리고, 터키에 의해 집단학살된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14세기 코소보 전투 때 오토만제국에 의해 말살된 세르비아인을 기릴 것인가?

    우리가 익히 다룬 바이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 카운티 정부가, 심지어 인종적으로 다양한 카운티 정부가 역사적 비극을 기리는 적절한 장소인가? 만일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건가?

    우리는 의회가 일본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의 이름을 중재해야만 하는 것에 의문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영합하도록 놓아두자. 그러나 그들이 지도를 만드는 일에 영향을 주도록 하는 건 막아야 한다.’

    워싱턴 포스트 사설의 문제들을 짚어보자. 먼저, 미국 정치인이 국제 문제에 끼어드는 게 온당하냐고?

    이건 단순히 국제 문제가 아니다. 동해는 한·일 간의 명칭에 대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미국도 책임져야 할 잘못된 역사의 바로잡기다. 국제적으로 일본해가 공인된데는 미국이 원인 제공을 했다.

    19세기 말 조선과 미국은 우호조약을 통해 조선이 부당한 침략을 받을 시 미국이 돕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를 넘보는 일본의 흉계를 못본 척 외면했다. 나아가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저들의 식민지화를 용인했다. 조선의 일본 식민지를 묵인하고 한반도를 병탄에 빠뜨리는데 결정적인 조연을 한 것이다. ‘일본해’는 미·일 야합의 부산물이다. 뉴욕 타임스도 1919년 3·1운동 직후 사설을 통해 조·미 우호조약을 지키지 않은 미국으로 인해 오늘날 조선이 일본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고 참회를 했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워싱턴 포스트는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워싱턴 포스트는 2007년 만장일치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연방하원 의원들 전체를 사실상 농단했다. 그들은 주제 파악을 못하는 모지리라서 남의 나라 역사 문제에 끼어들었나? 워싱턴 포스트는 글을 쓰기 전에 제발 역사 공부 좀 해라. 동해 병기는 한국계 시민들과 일본계 시민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들 자녀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의 길이다.

    백보 양보해서 역사적 배경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인접한 바다 명칭에 대한 분쟁이 벌어질 경우, 해당 국가들의 명칭을 병기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고 온당하다. 영국해협(영국)과 라망슈(프랑스), 피란만(슬로베니아)과 사부드리야만(크로아티아) 등 각자의 고유 이름을 병기하는 사례들을 워싱턴 포스트는 진정 몰랐던가.

    둘째, 일본이 버지니아주 최대 투자국인데 한국인만 편들면 어떡하냐고?

    투자를 많이 하면 진실을 외면해도 되나? 혹시, 한국이 투자를 더 하면 한국해로 바꿔줄텐가? 돈없고 힘없으면 역사를 분탕질해도 되나? 철저히 이익을 쫒는 장사치나 3류 정치꾼도 아니고 정론직필을 펴야 할 언론이 어찌 이런 논리를 펴는지 요령부득이다.

    셋째, 페어팩스 카운티의 위안부기림비 건립도 잘못이라고? 기림비를 세운 것처럼 영국에 죽임을 당한 아일랜드인, 터키에 학살당한 아르메니아인, 14세기 오토만제국에 의한 말살당한 세르비아 희생자도 기려야 하냐고?

    그런 논리라면 미 대륙의 수많은 홀로코스트 추모 시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인들이 나치에게 학살당했나? 아르메니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캘리포니아의 타운들, 뉴저지 포트리, 버겐카운티의 아르메니아 추모비는 대체 왜 서 있을까. 아일랜드 대기근 희생자 추모비를 뜬금없이 왜 미국 땅에 세우는가 말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비극을 추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안부기림비는 가장 가까운 근세의 참극으로 유린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제국주의 군대가 자행한 초유의 집단 성범죄, 납치와 조직적 강간이 근 10년 간 지속된 사건에 대한 인류의 고발장이다. 피해자들은 한국계 미국인의 어머니요, 할머니였고,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심지어 네덜란드, 호주까지 퍼져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일본 정부가 사실을 부인하고 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반성을 모르는 일본을 준엄히 꾸짖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교훈적 조형물을 페어팩스 카운티가 조성한 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으로서 아낌없이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BR>
    아베같은 극우 정치인이 빙의해서 쓴 듯한 사설에 참담한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듣보잡 신문’도 아닌 워싱턴 포스트가 이런 정도의 역사적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다. 칼럼니스트의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언론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로 인해 양식있는 독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마땅히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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