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45)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를 '종북'이라 표현한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한 재판부가 같은 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성상납 받으면서 총 맞아 죽은 독재자'라는 표현에 대해선 "명예훼손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정희 대표에 대해선 '종북 성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대표 부부를 종북이라 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상당한 의혹이 제기된 부분이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 사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고의영)는 8일 박지만(56)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젊은 여성들의 성상납을 받았다는 발언 때문에 고인과 유족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주진우(40) 시사인 기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성상납 발언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씨는 2011년 10월 '박정희의 맨얼굴'이란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대학생이나 자기 딸뻘 되는 여자를 데려다가 저녁에 성상납 받으면서 총 맞아 죽은 독재자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1심은 "주씨가 이 같은 발언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비교했고, '훌륭한 분이 나오신 거는 맞다'고 비아냥거려 박 전 대통령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평가했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한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또 "연회 자리에서 성상납이 이뤄졌다거나 이 연회가 성상납을 위한 모임이라 인정할 자료를 찾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주씨는 성상납 의혹을 단정적으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씨가 언급한 내용과 관련해 다른 곳에서도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고, 비슷한 취지의 자료도 많이 나와 있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현대사에서 일어난 사건은 의견과 논쟁을 통해 사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주씨의 발언은 진실 규명 과정의 하나이기 때문에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정희 대표 판결에선 "구체적 증거 없이 단정해선 안 된다"고 했던 재판부가 같은 날 다른 사건에선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주씨가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간 것은 맞습니다. 거기까진 팩트인데 뤼브케 대통령(서독 대통령)은 만나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일시적 착오에 불과했지만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다"며 이에 대해서만 위자료 200만원을 인정했다. 1심은 주씨에게 모두 500만원의 위자료를 내라고 판결했었다.

TV조선 화면 캡처